앤드루 포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마치 전문 과학서의 제목을 한 소설집. 그러나 이 소설집에 담긴 10편의 소설들은 모두 아련하다. 어쩌면 물리학의 입자를 발견하기 위한 도구인 안개상자를 보는 듯한 느낌.
열 편의 소설은 모두 과거를 바라보고 있다. 장편소설이라면 삶의 종단(縱斷)하였겠지만, 단편소설은 삶의 어느 한 시점을 잘라서 보여준다. 그 시점이야말로 삶의 갈림길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삶과는 다른 결의 삶을 살 수도 있었다는 가정은 그 시점을 주목하게 한다.
소설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상처를 가진 이들이다. 그 상처는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넓혀 보면 그게 상처가 되는 것은 또한 사회적 성격을 띤 것이다. 이를테면 여러 차례 등장하는 동성애(또는 양성애)가 그런 것이고(<아술>, <머킨>, <코네티컷>), 교수와 학생의 사랑(<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도 그런 것이다.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경험이 누군들 없으랴. 삶의 어느 한 귀퉁이에 놓고 온 그 기억은 불쑥불쑥 기억 밖으로 나온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괴롭거나 혹은 아련하다.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이 괴롭기도 하고, 그래서 죄책감이 들기도 하지만, 또 돌이켜보면 그런 삶이었기에 나의 현재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고, 또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도 한다. 무엇이든 나는 과거의 삶에서 이어진 것이다.
앤드루 포터의 문체는 매우 신중하다. 전혀 거칠지 않고, 간결한 문장을 보면 고심해서 단어를 고르고, 여러 차례 문장을 다듬은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결은 다르지만 이언 매큐언을 읽을 때의 느낌이다. 잊혀질 수 없는 삶의 한 지점을 바라본 눈길이 이렇게 아름답게 여겨질 수 있는 건 바로 문장의 섬세함 때문이라는 걸 읽는 내내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