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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ul 27. 2021

수학과 시(詩)

세드리크 빌라니, 《수학은 과학의 시다》


“시인의 영혼을 가지지 않는다면 수학자가 될 수 없다”고 위대한 수학자 소파야 코발렘스카야가 말했다지만, 수학과 시(詩)는 좀처럼 인정하기 어려운 관계다. 하지만 필즈상까지 수상한 수학자가 얘기하는 수학과 시의 관계를 읽으면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가장 멀리 떨어져서 서로 관망만 할 것 같은 이 둘의 관계가 영감이라든가, 창의성이라든가 하는 단어들에서 서로 만나고 있는 것이다.


세드리크 빌라니는 수학과 시가 가지는 공통점을 몇 가지(씩이나) 제시하고 있다.

“만약 수학이 문학 장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수학은 분명히 시일 것이다. ... 시적 요소는 낯설고 예기치 않은 요소들의 출현에서 비롯될 수 있다.” (<수학, 과학 그리고 시>, 27쪽)

“시와 수학의 중요한 공통점은 제약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제약과 창의성이 불가분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제약과 창의성>, 33쪽)

“수학과 시의 관계를 찾아볼 수 있는 방법은 또 있다. 그것은 바로 영감이다. 수학 개념은 시적인 예술 작품에 영감을 줄 수 있다.” (<영감의 원천>, 41쪽)

“이처럼 서로 다른 요소가 갖는 관계야말로 수많은 수학 방법론의 기본이다. 그것은 시의 핵심이기도 하다. 시인도 두 개의 대상, 사물과 일상의 현상을 예로 들면 이미지, 알레고리, 표상, 온갖 종류의 유추를 통해 연결한다.” (<관계 만들기>, 48쪽)

“수학적 방법론이 시의 방법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또 있다. 그것은 세계를 재창조하겠다는 야망이라는 공통점이다.” (<휴대 가능한 세계>, 51쪽)

“수학자는 무엇보다 창의력이 있는 사람, 창조하는 사람이다. ... 시인이 평범한 것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보고 그것을 우리에게 이미지와 말로 설명하듯이 말이다.” (<선견지명>, 61쪽)


이렇다면 절대로 시는 수학에 다가갈 수 없고, 수학자는 시인의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처럼 수학과 시, 수학자와 시인은 가장 멀리 떨어진 분야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생각하고 있다. 비록 시인이 수학자가 될 수 없고, 수학자가 시인이 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서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수학과 시의 거리를 좁힌 이 뛰어난 수학자의 짧은 글 모음(모두 10편의 짧은 글이고, 모두 합해봐야 100쪽를 넘어가지 않는다. 부록으로 넣은 앙리 푸엥카레의 글까지 포함해봐야 120쪽을 겨우 넘어간다)을 읽으면서 수학의 성격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또한 수학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것인지, 우리의 문명에 수학이 어떤 기여를 해왔고, 하고 있는지, 혹은 수학적 사고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등과 같은 다른 수학 관련 교양도서의 메시지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 다름이 이 책의 핵심이다. 수학의 쓰임보다는 수학이라는 언어가 가지는 의미를 파고들고 있고, 그러다보니 수학의 언어가 시의 언어와 닮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10편의 글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박히는 글은, 정작 시에 관한 얘기를 가장 적게 하는 <불완전함에 대한 찬가>라는 글이다. 위대한 수학자인 앙리 푸엥카레의 삼체문제에 대한 실수를 이야기하면서 바로 그 실수가 있었기에(실수에도 불구하고 아니라) 푸엥카레는 위대한 수학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20세기 초엽의 물리학의 상황에서도 완벽하지 않은 그 상황이 ‘원소의 방사성 변환,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과 같은 대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음악도 매우 수학적이지만(그것을 알아낸 것은 무려 피타고라스 시대, 혹은 그 이전이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완벽한 음계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한다. 2의 거듭제곱과 3의 거듭제곱과 절대 같아질 수 없다는 수학적 이유 때문이다(고 세드리크 빌라니가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음계를 구축하기 위해 속임수를 써야 한다. 바로 음악은 그런 불완전함을 구성 요소로 삼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그 불완전함을 통해 풍요롭고, 친숙하며, 가능성을 가득한 음악을 만나고 있다. 생물의 진화도, 언어의 발전도 완벽하지 않다는 데서 이뤄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 세드리크 빌라니는 “위대한 진보는 불완전함에서 나옵니다”라고 쓰고 있다. 불완전함. 그것은 수학의 속성이 될 수 없다고 여기겠지만, 정작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가 불완전함 속에서 살아가듯이 수학도 완벽을 지향하지만, 결국은 불완전함을 토대로 이뤄지는 과학이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괜히 수학이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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