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선포된 지 1년이 막 지난 1950년 10월 3일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중난하이 이넨당에 모였다. 한국전쟁에서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북한을 도와 출병할 지를 결정하기 위한 자리였다. 마오쩌뚱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못할 수도 있다며 기록하지 못하도록 했다. 여럿이 출병 반대를 주장했지만, 마오는 '혈맹'을 강조하며 참전을 결정했다. 북한이 전쟁을 개시하는 데 대해 소련과의 갈등이 있었고, 미국의 군사력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마오는 “역사는 대포로 쓰는 것이 아니다" 라고 했다.
《중국인 이야기 2》 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내용은 한국전쟁과 관련한 부분을 포함하는 <2. 펑더화이와 마오쩌둥의 애증>일 수 밖에 없다. 펑더화이(彭德懷)는 한국전쟁에 지원군으로 참전한 중국군의 총사령관이었다. 펑더화이가 60년대 '대약진운동'과 관련하여 마오쩌둥을 비판하며 실각한 이야기로 시작하기 때문에 펑더화이와 마오쩌둥 사이의 협력과 갈등을 중심으로 화제를 풀어낸다. 하지만 그 둘 사이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에 관해서 중국이 참전하게 된 과정에 관해서 잘 알지 못했던 사연들이 관심을 집중시킨다.
2권은 1권에서 각 장들이 모두 독립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몇 가지 주제로 묶고 있다. 여성 혁명가에 대한 이야기, 펑더화이와 마오쩌둥 사이의 관계, 학력(學歷)보다 학력(學力)을 중시했던 학자들 이야기, 쑨원과 그 주변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 혁명에 투신한 이들의 사랑 이야기, 정보와 선전을 담당했던 여러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 이렇게 묶고 있다. 인물들의 관계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데, 그 가운데서도 남녀 간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저자가 도표를 만들어가면서 봐도 상식을 접어두지 않으며 이해가 불가능한 정도"라고 하고 있다. 쑨원이나 장제스, 마오쩌둥과 같은 역사에 남은 혁명가를 비롯하여 혁명에 투신한 많은 인물들의 여자 관계가, 혹은 남자 관계가 복잡했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곤란할 정도다. 이미 아내가 있는 상황에서도 다른 여자와의 결혼에 목매다는 모습을 그저 '영웅과 여성 편력의 가까운 관계에 관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끝나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게 당시에 중국의 관행이었고, 그런 시대를 거치며 지금에 이르렀다고 볼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지금 중국이 어떤 관행을 지니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 2권에서 또 오래 기억남을 부분은 시안사변을 일으켜 국공합작을 강제하고, 중국공산당의 기사회생의 기회를 준 장쉐량의 운명과 각각 쿵상시라는 거부, 쑨원과 장제스의 아내가 된 쑹아이링, 쑹칭링, 쑹메이링 자매의 행보다. 장쉐량과 쑹메이링의 관계는 시안사변을 '난해하고 희극적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