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뮈소의 작품을 읽을 때면 들었던 느낌들이 있다. 감정 표현의 섬세함에서 오는 아련함, 사건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데서 오는 시원함 같은 것들이었다. 가끔 비현실적인 설정이 있긴 하지만, 대중 소설에 그런 환타지를 과감하게 들여놓는 과단성도 너무 황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욤 뮈소의 작품을 나오면 바로 읽게 된다.
그런데...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은 그런 기욤 뮈소에 대한 느낌을 가질 수 없다. 인물들의 감정에 깊이 이입되지도 않고, 사건들은 이것저것 열려 있는 채로 끝내버리고 말았다. 독자들에게 다음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해석의 여지보다는 마무리 짓지 못한 결말, 거두지 못한 떡밥 같은 느낌이 더 크다.
많은 의문 내지는 의심을 남기는 소설인데, 줄거리 대신 그것들에 대해 써본다.
우선 록산 몽크레스티앙 경감이다. 소설은 록산이 노란 조끼 시위 와중에 한직으로 밀려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그가 어떤 일을 저질렀기에 한직으로 좌천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가 센 강에서 구조된 이름 모를 여인 사건을 파고드는 심리적 요인도 매우 부실하다. 과거에 대해선 문과대학 입시반 시절의 기억만 몇 차례 떠올릴 뿐인데, 그게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다음은 발랑틴이다. 경찰 한 부서의 역사에 대해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대학원생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그녀 역시 어떤 이유로 록산의 수사를 적극적으로 돕는지 알 수 없다. 게다라 그녀의 움직임은 록산의 지시에 따른 것일 뿐 전혀 능동적이지 않다. 너무 평면적인 인물로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젊음의 생기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라파엘 바타유가 거짓말을 하게 된 이유는 충분히 납득이 간다. 그 개인적인 거짓말에 비롯된 사건이 너무 커지긴 했어도 그의 의도가 황당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사건에 깊이 개입되어 가는 과정에 개연성이 너무 떨어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가랑스 드 카라덱도 어떻게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녀가 이 커다란 연극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강제로 어떤 역할을 맡게 되었는지 불분명하다. 또한 맡은 역할도, 그저 배우일 뿐이었는지, 공동 연출이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만약 주연 배우 겸 공동 연출이었다면 그녀는 왜 알몸으로 센 강에 빠졌을까? 내가 가랑스에 대해 뭔가를 놓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