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말 유럽, 특히 프랑스를 중심으로 미친 듯이 세상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른바 둔주(遁走, 사실 이 말을 여기서 처음 알았다) 유행병이었다. 우리가 ‘역마살’이라는 부르는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한참 후에 집에서부터 한참 먼 엉뚱한 곳에서 발견된 그들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알베르 다다라고 하는 기능공의 사례를 그의 주치의인 필리프 티씨에가 처음 책으로 보고한 이래, 우후죽순 격으로 보고되기 시작했다(그 책의 제목도 “미치광이 여행자”였다). 이 둔주는 정신질환으로 취급되었다. 전문가들은 이 정신질환을 보고하면서 간질성인지, 히스테리아성인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전혀 보고되지 않았고, 독일에서도 아주 드물게만 일화적으로만 보고되었던 둔주 질환은 20년 남짓 유행하다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은 이제 돌아다니기를 그만둔 것일까?
이언 해킹이 둔주에 주목한 이유는 바로 그것을 정신질환이라고 분류되었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그 사실 때문이다. 말하자면 ‘시대적 정신질환’(옮긴이가 transient를 ‘시대적’이라고 번역한 것은 정말 적절하다)인 둔주가 어떤 배경에서 나타났으며, 또 정신질환으로 취급되었는지, 과연 실재했던 것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실 이는 진부할 수도 있는 논쟁의 일부이다. 정신질환이 ‘실재하는(real)’ 것인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인지에 관한 논쟁이다. 미셸 푸코가 비판했던 그것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언 해킹은 질문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개한다. 그는 실재성에 관해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어떻게 존재 ‘가능’했는지를 보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 그는 ‘생태학적 틈새(ecological niche)’라는 은유를 도입한다. 생물학자(특히 생태학자)에게는 익숙한 이 용어는 시대적 정신질환이 특정한 공간에서, 특정한 시기에 번성한다는 내용을 담아낸다.
그리고 그런 ‘시대적 정신질환’을 위한 ‘생태학적 틈새’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또한 몇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그것이 ‘질환’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의학의 영역이다. 질병분류법에 의해 어떤 질병명으로 불려야 하는 것이다. 둔주는 논쟁이 있었고, 지금은 사라졌거나 다른 의미로 불리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던 여러 질환명으로 불리면서 그 조건을 만족했다. 두 번째는 문화적으로 양면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언 해킹은 당대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것과 용인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시대적 광기가 나타난다고 보는데, 둔주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관광 여행이라는 미덕과 부랑이라는 악덕 모두로 해석될 수 있었다(“둔주는 관광여행과 부랑의 경계에서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 112쪽). 하나의 사실이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세 번째로 필요한 것이 그것이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떤 현상인지 뚜렷이 구분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둔주는 분명 그런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현상이 일종의 해방구로서 작용해야 하는데, 이것은 지금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떠나라!”라는 구호!).
1890년대 둔주 유행병은 정신질환으로 보였던 게 아니라, 분명한 정신질환이었다. 위와 같은 여러 조건을 지니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 조건이 어느 지역에서는 충족되지 못했고, 또 어느 시점에 그 조건이 사라졌다. 그래서 특정한 지역에서만 그 정신질환을 지닌 이들이 진단되었고,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질환을 앓는 이들이 사라지고 말았다(정확히는 그런 진단을 내리지 않게 되었다).
저자는 알레르 다다를 위시한 둔주 유행병자들의 기록을 검토하면서 현재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정신질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 이런 질환, 혹은 유사한 질환을 우리는 최근에도 의심해 볼 수 있다. 저자는 ‘월경전증후군’이라든가, ‘반사회성인격장애’ 또는 ‘간헐적폭발성장애’, 나아가 노이로제 같은 것들을 지목하고 있다. 이른바 다중인격이라 불리는 ‘해리성정체성장애’ 역시 그렇다. 저자는 이것들이 실재하지 않는 정신질환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그것들이 정신질환으로 취급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어떻게 한 유형의 정신질환이 출현하고, 자리 잡고, 특정 지역과 시대를 장악한 다음, 사라지는 것일까”, 79쪽). 둔주가 어떻게 정신질환이 되어 전문가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 주제가 되었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는지에 대해 고찰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