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흐를 류(流)’라는 게 의미심장하다. 내용을 미리 자세히 전해 듣지 않았어도 삶과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짐작케 한다. 작가도 아마 그걸 생각하고 제목을 그리 정했으리라. 끝까지 읽기도 전에 내 짐작이 옳을 것이라 확신하게 된다.
대만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물론 다른 이야기도 드물게 읽었다. 그것도 1970년대에서 1980년대의 대만은 더더욱 그렇다. 현재의 중국을 ‘중공’이라 부르던 시절엔 지금의 대만은 ‘중화민국’이라고 하여 우리의 맹방이었다. 이후 중공이 중국이 된 이후 대만의 역사는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대한민국은 맹방이라고 하던 나라에 대해 어느 날 갑자기 외교를 단절했다. 어느 해 그 막강했던 국민당이 선거에서 패하고 대만 출신 중심의 민진당이 정권을 잡았단 소리가 들려 상당한 이목을 끌었지만, 그 이후 정권의 교체에 대해선 관심이 시들해졌다. 한류의 열풍이 불고, 대만 여행 붐이 인 것은 이 소설이 다루는 시대보다 한 세대는 뒤의 일이다. 소설에서 읽는 대만의 1970년대, 1980년대는 활력이 있었으나 어떤 면에선 매우 혼란스러웠다. 중국 본토와 비교되면 자유를 강조했지만, 강압적이었다. 우리나라와도 비슷했다.
1975년 4월 5일 장제스가 사망했다. 대만에선 우리나라의 박정희의 사망과 비슷하게 받아졌을 것이다(서울의 봄을 겪고, 광주를 겪으면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대만은 조용히 그 아들인 장징궈가 총통이 되었다.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줘야 할 지...). 장제스 사망 다음 날 열일곱 살 고등학생 예치우성의 할아버지가 살해됐다. 예치우성이 할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10년간 그 죽음을 잊지 못하고 살인범을 찾는다. 할아버지를 살해한 이를 찾는다는 설정, 그리고 그 결말이 반전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분명 미스터리이지만, 사실 미스터리물로서 긴박감은 전혀 들지 않는다. 10년의 세월을 다루면서 몇 장면만을 추린 응축감 없이 도도히 서술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할아버지의 살해범을 찾는 과정보다는 오히려 예치우성의 성장 과정에 대한 얘기가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대만의 70년대와 80년에 겹치는 예치우성의 10대와 20대는 파란만장하다. 그의 학교 생활 자체가 굴곡이 심했다: 일류 고등학교에서 완전 삼류 고등학교로의 전학, 대입 실패, 군사 학교 입학과 퇴학, 그리고 군대 입대 등. 친구들과의 관계도, 사랑도 그랬다. 깡패 친구를 둔 운명이랄? 사랑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아니, 그럴 수도 있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된다. 군대에서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나라와 대만이 아니라면 담지 못하는 장면이란 생각도 든다. 그래서 친근하기도 하고, 또 역겹기도 하다. 그런 파란만장한 개인의 역사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중국 본토에서의 국민당과 공산당의 전쟁에 대한 얘기와 맞물린다. 결국 이 이야기는 그 시대의 비극이 연장된 결과이며, 또한 현대사가 풀어야 할 이야기인 셈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역사 소설이기도 하다.
긴장감을 가까스로 이어나가는 미스터리물, 좌충우돌하는 청춘의 고뇌를 다룬 성장 소설, 중국의 현대사가 반영된 역사 소설로서 이 소설에서 가장 큰 장점으로 여겨지는 것은 문장이다. 이 소설에서는 다양한 장면을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다. 타이페이 골목 시장의 모습, 교외의 구부러진 길, 식물원에서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 일부러 공들여 자세하게 묘사한다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고개를 돌리면서 보이는 모습, 느껴지는 장면들이 고스란히 문장에 담긴 느낌이다. 이런 문장이어서 장면들이 선명하고, 등장인물들이 살아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