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이야기로 재구성하다

요네자와 호노부, 《흑뢰성》

by ENA

싸구려 무협소설 제목에다 표지까지 음산한 책이지만, 단 몇 장을 읽고 나면 빠져든다.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면서, 추리소설이면서, 심리소설이다. 일본 전국시대 사들의 쟁패를 다루면서도, 괴이한 사건의 전말을 추리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치열한 심리 게임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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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 전국시대의 혼란을 정리하며 패권을 눈앞에 둔 시점에 오다 노부나가에게 반기를 든 아라키 무라시게의 아리오카성이다(찾아봤더니 아라키 무라시게는 실제 인물로 무장이면서 다인(茶人)으로 리큐십철(利休十哲)의 한 명이라고 한다. 소설에서도 그의 다인으로서의 풍모가 나온다). 무라시게는 오다의 휘하에 있었으나 그에 대적하는 모리 가문 쪽에 붙고, 철옹성과 같은 아리오카성에서 농성 중이다. 모리 가문이 그들을 응원하러 오기를 기다리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고, 주변의 믿었던, 혹은 의심하던 세력들은 오다에게 항복하면서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인다.


소설은 무라시게를 설득하기 위해 온 구로다 간베에라는 명민한 사내를 지하감옥에 가두는 장면에서 시작한다(‘흑뢰성(黑牢城)’이란 제목이 뭘 의미하는지 궁금했는데, 바로 지하감옥을 뜻한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당시의 상식으로는 그의 설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를 죽여야 했지만, 제발 죽여달라는 간베에의 처절한 외침을 무시하고 무라시게는 그렇게 하지 않고 살려둔다. 그리고 성 안에서는 괴이한 사건이 일어난다. 인질로 잡아 두었던 소년이 이해하지 못할 방법으로 살해되고, 기습 작전으로 베어온 오다 쪽 장수의 머리가 바뀌어 버린다. 그리고 오다 쪽 밀사로 온 승려가 역시 미스터리한 방식으로 죽고, 그를 죽인 반역자가 번개에 맞아 죽는 순간 무라시게의 명령도 없이 철포가 발사된다.


이 수수께끼와 같은 사건들은 모두 성 내부의 혼란을 가져오고, 점점 싸울 의지를 분산시킨다. 무라시게는 이 미스터리를 풀어야 했으며, 그때마다 자신이 지하감옥에 가둔 간베에를 찾아간다. 여기서 무라시게와 간베에의 치열한 심리전이 벌어지고, 간베에는 알 듯 모를 듯한 힌트를 준다. 이를 토대로 무라시게는 가까스로 미스터리를 풀게 된다.


그러나 전세는 기울고, 무라시게는 이 모든 사건이 어떻게 해서 하나의 흐름 속에서 벌어졌으며, 그것을 꾸민 이가 누구인지 깨닫는다. 그리고 간베에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고, 그게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인 줄 알면서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소설은 간베에가 열 달 동안 지하감옥에서 지독하게 품은 복수의 칼날이 결국은 허무한 것이었다는 걸 보여주며 끝난다. 허무한 것은 간베에의 복수심만이 아니라 전쟁 자체라는 것이었다.


소설은 각 장마다 긴장을 놓지 않는다. 문장과 언어는 늘어지지 않아 그 긴장감을 잘 붙잡아 놓고 있다. 사건의 내용은 그지없이 중세의 이야기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은 영락없는 현대 추리소설이다. 전쟁과 삶의 진퇴에 관한 윤리관이 맞붙는데, 이는 어느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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