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제목의 소설이 있다. 로버트 해리스의 작품이다. 역사에 대해서, 그리고 대체 역사의 대가라 불리는 로버트 해리스지만 그 작품은 역사와는 관계가 없었다. 지극히 정치적이었던 그 소설은 현실의 정치인을 목표로 삼았었다.
이 같은 제목의 다른 소설을 앞에 두고 여러 상상을 했다. 대필 작가라는, ‘ghost writer’를 소재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로버트 해리스와 같은 정치 소설도 가능하겠고, 공포 소설도 가능할 것 같고, 로맨스 소설도 가능할 것 같았다. 이 소설을 어떤 장르일까? 책 표지에 달려 있는 띠지의 ‘미스터리&스릴러 부문’이라는 건 이미 봤지만 “어둡지만, ....... 아름답다.”가 뭘 의미하는지 궁금했다.
열 다섯 편의 소설을 쓰고 성공시킨 베스트셀러 작가 헬레나 로스(그녀의 주종목은 로맨스다)가 뇌종양 판정을 받고, 앞으로 살 날이 석 달 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의사에게서 듣는 것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예민하기 이를 데 없고, 까탈스러우며, 자신의 규칙을 철저히 지키며, 남에게도 그걸 강요하면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그녀는 죽기 전에 써야 할 얘기가 있었다. 이미 계약해서 절반 넘게 쓴 소설 계약을 파기하고, 새로운 소설을 쓰기로 한다. 자신의 속도로는 죽기 전에 완성하지 못할 것 같아, 대필 작가를 지목한다. 자신의 라이벌 작가. 이-메일로 악담을 주고받는 사이. 자신과는 달리 늘씬하고 성적 매력을 과시하는 누드 사진을 잡지에 게재하는 그 작가만이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 시켜줄 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녀의 집으로 찾아온 건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그렇게 둘의 공동 작업이 시작되었다. 한 사람이 개요를 쓰면, 다른 사람이 글을 쓴다. 그렇게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 완성되어간다. 그녀는 무엇을 써야만 했을까? 그건 소설의 앞부분부터 암시가 되어 있다. 4년 전에 죽은 남편과 딸에 관한 이야기다. 처음부터 남편과 자식을 자신이 죽였다는 것을 밝히고 있고, 아무도 모르는 그 비밀을 그걸 마지막 작품에 남기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가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은 왜 남편과 딸이 죽어야 했는지, 왜 헬레나는 그에 대해 분노와 함께 죄의식을 함께 지니고 있는지이다. 소설은 그 과정을 따라간다.
이 소설에서 묘하게도 바로 직전에 읽었던 스티븐 킹의 《빌리 서머스》가 떠올랐다. 《빌리 서머스》에서 킬러는 마지막 한탕을 앞두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글로 남기며 자기 자신을 직시하게 되면서 스스로를 위로해간다. 이 소설 《고스트 라이트》에서도 작가 헬레나가 쓰는 글은, 비록 그녀가 작가이지만 이전에 쓴 글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글이다. 자신을 자신에게 이해시키고,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글이다. 《빌리 서머스》의 킬러 빌리 서머스가 쓰는 글과 다를 바가 없다. 《빌리 서머스》에서도 빌리가 쓰는 글이 또 하나의 줄거리를 이루듯이 헬레나가 쓰는 글 역시 이 소설에서 또 하나의 줄거리를 이룬다. 다르다면 소설 속 이야기의 결말이 충격적이라는 점이다(‘충격적’이랄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고, 그게 남편의 비밀이라는 것도 예상할 수 있지만, 그게 그럴 것이라고는 적어도 나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헬레나가 대필 작가 마크에게 이끌려 간 마크의 농장에서 소의 출산 과정을 지켜보는 장면이다.
“세상에. 너무나도 놀라운 광경이다. 새끼의 몸이 갑자기 미끄덩 하고 빠져나왔다. 흙 위로 새끼의 몸이 툭 떨어지는 걸 보자 심장이 조여오는 것 같았다. 새끼는 체액에 흠뻑 젖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양막 찌꺼기가 아직 새끼 소 몸 위에 남아 있다. 새끼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한 번 씰룩거리지 않았다. 돌연 통증이 가슴을 관통했다. ...
어미의 콧구멍이 새끼의 몸 위를 따라 씩씩거리며 벌름거렸다. 그러더니 어두운 자줏빛 혀를 내밀어 새끼를 핥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참아보았다. 마터의 행동은 확고하고 결의에 차 있었다. 마터는 새끼가 죽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상태에서 새끼를 핥아주는 모습이 내 가슴을 찢어지게 했다.
...
새끼가 눈을 뜨고 있었다. 새끼의 머리가 갑작스런 전율을 하듯 빠르게 흔들렸다.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왔다. 나는 손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빠르게 마크를 돌아보았다. ”살아있어요!“”
작가가 이 장면을 자세히 넣은 이유는 충분히 짐작한다. 새끼 소와 죽은 헬레나의 딸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생명의 놀라움을 헬레나가 느끼는 것이고, 짧게 남아 있는 삶이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살아갈 동력을 여기에서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뻔하고 상투적이지만, 우리는 그런 상투적인 것을 기꺼이 받아줄 수 있다. 이렇게 하여 그녀는 결국 “말할 수 없던 이야기”의 마지막을 스스로 쓸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