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近代)’라는 말이 참 묘하다. 고대나 중세란 말은, 사람에 따라 달리 보기도 하지만 어느 시대를 말하는 건지 정해져 있지만, 근대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현대(現代)에 앞선 상대적인 개념이니 말이다. 현대를 어디서부터 볼 지에 따라 근대가 달라지거니와, 현대는 늘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근대도 그에 따라서 현대와 가까워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살아가는 지금은 얼마 후면 근대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그래도 내가 현대를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근대 사물’이라고 제시한 걸 보니 내가 살아온 게 근대에서 현대에 걸쳐 있구나, 깨닫게 된다. 여기에 제시된 여덟 가지의 사물을 보면 내가 경험하거나 잘 알고 있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섞여 있다. 성냥, 재봉틀, 석유풍로(곤로), 고무신이 앞의 것이고, 전차, 무성 영화, 인력거, 축음기가 뒤의 것이다. 뒤의 것은 전적으로 이해와 지식의 차원에 머물지만, 앞의 것은 내 경험 속에서 해석된다.
특히 곤로가 그렇다. 책에서는 석유풍로가 맞는 용어라고 하지만, 내 기억엔 곤로다. 곤로라는 말이 일본말(??, こんろ)이라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했었고, 인지했었더라도 다들 그렇게 부르는 걸 달리 부르지도 않았을 것 같다(미싱도 마찬가지다). 곤로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놓여 있었는지 너무도 선명하다. 어머니는 거의 모든 음식을 그것으로 했고, 종종 나도 거기에 불을 피우기도 했다. 그을음이 안 나게 잘 붙여야 하는데 가끔 곤혹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게 가난의 상징이었는지, 그래도 나이진 형편을 가리키는 건지 지금도 분명하지 않다.
고무신은 언제까지 신었을까? 늘 신던 건 까만 고무신이었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신었던 기억도 있다. 운동화를 선망했지만, 운동화가 있었음에도 고무신을 가끔 신었다. 까만 고무신을 신고 다녀도 창피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그걸 편하게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다들 고만고만했던 시절이었고, 또 그런 동네에서 살았으니.
정명섭은 이들 물건들이 어디서 연유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고(그런 걸 박래품(舶來品)이라고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또 어떻게 우리 삶 속에 스며들어 사용되었는지, 때로는 그걸 만들고 유통하는 과정에 어떤 수탈과 고달픔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런 이야기들도 분명 내 머리 속에는 남았겠지만, 내 가슴 속에 다시 떠오른 몇 가지 장면들이 더 소중하다. 그걸 보면 나는 분명 근대를 거쳐왔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