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면 우리나라 명절을 앞둔 기차표 예매와 관련된 얘기인 줄 알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건 아니고, 부제처럼 제1차 세계대전의 기원에 관한 역사책이다. 원제의 “Time-Table”을 ‘기차 시간표’로 번역한 셈인데, 물론 내용에 기차에 관한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가 의도한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제1차 세계대전을 상징하는 것으로 기관총, 참호, 철조망 등을 드는데, 전쟁이 그렇게 확대되었던 데는 기차가 중요한 역할을 하긴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흔히 선발 제국주의와 후발 제국주의 간의 일어날 수 밖에 없던 전쟁이 사라예보의 총성이 계기가 되어 일어난 전쟁으로 일컫는다. 그런데 테일러는 그것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전쟁의 기원을 찾고 있다.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를 조금 달리 보는 것이다.
당시 유럽의 열강들 사이에는 상호간의 조약이 얽히고 설켜 있었다. 한 나라가 어느 나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자동적으로 참전을 한다는 조약들이었다. 그런 조약 관계로 3국 협상국(영국, 프랑스, 러시아)과 동맹제국(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터키)가 축을 이루며 대립하고 있었고, 기타 다른 국가들도 이리저리 얽혀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상호 조약을 통해서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안전장치가 상대방이 쉽게 전쟁을 벌일 수 없도록 만든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유럽은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평화 상태였다(유럽은 중세 이래 전쟁이 그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전쟁 계획은 전쟁에 참전해보지 않은 최고 사령관이 책상 앞에서 계획표(바로 time-table)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었다(바료 슐리펜 계획이란 게 그런 식으로 세워졌다).
그런데 그들이 평화의 수단이라고 여겼던 상호 조약은 거꾸로 그들 국가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끌고가버렸다. 한 국가라도 전쟁에 돌입해버리면 국가 사이에 맺은 조약에 의해 모두가 끌려라는 형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책상 앞에서 세운 전쟁 계획은 당시 유럽 곳곳을 연결해놓은 철도와 기차를 이용해서 전면 동원이 가능한 체제가 되어 버린 상태였다. 세르비아에서 울린 총성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이의 국지전으로 끝날 수 있었지만(그래야 했지만), 오스티리아-헝가리 제국은 독일을 끌고 왔고, 세르비아는 러시아를, 러시아는 프랑스를, 프랑스는 영국을 끌고 왔다.
1914년 6월 28일에 울린 사라예보의 총성이 7월의 위기를 거치면서, 그들이 애초에 만들어놓았던 시간표대로 전쟁에 끌려들어간 버린 게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것이 테일러의 주장이다.
당시에 전쟁에 열광하던 분위기에 대해서도 테일러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실제 전쟁이 선언되기 전에는 어디서도 다른 국가를 섬멸시키자는 플래카드도 걸리지 않았고, 시위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대중들의 전쟁 요구는 없었다. 하지만 전쟁이 선언된 이후에는 전쟁에 대한 낭만적 열광이 들끓었다. 책상 앞에서 만들어진 전쟁 계획이 자신들 나라의 승리로 귀결될 것을 믿었고, 그래서 크리스마스 전에는 승전보를 울리며 자랑스럽게 귀환할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 시간표는 완전히 틀려버렸다.
전쟁의 기원을 설명하는 테일러의 논리는 간명하면서 설득력이 있다. 이런 견해가 얼마나 주류의 견해인지는 모르겠지만, 평화의 유지와 전쟁의 발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수 있는 단서를 준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대목 하나를 옮겨본다.
“어쩌면 1914년에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본질적으로 달랐다기보다는 두드러진 점이 있었다. 거의 모든 유럽 국가에서 전쟁으로 가는 데 기여한 세력들은 대체로 여느 때나 다를 바 없었다. 전투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지각없는 나이 많은 장군들, 국가적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요구를 받아온 자기들 세계에 갇힌 외교관, 호전적 애국주의를 조장하는 글 하나로 푼돈을 벌어들이는 데 골몰하는 언론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