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쪽이 넘는 캐서린 앤 포터의 소설집을 다 읽었다. 중간에 <창백한 말, 창백한 기수>를 읽고 그에 대해서 썼지만 전체에 대해서도 써야할 것 같다.
스무 편의 소설을 담았다. <오랜 죽음의 운명>, <정오의 와인>, <창백한 말, 창백한 기수>, <기울어진 탑>과 같이 거의 중편에 해당하는 소설도 있는가 하면 단 몇 페이지에 그친 소설도 있다. 평생을 쓴 소설을 모았으므로 단순하게 한두 단어, 한두 문장으로 정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정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녀의 소설은 내면 묘사에 중점을 둔다. 특히 스페인독감의 경험이 묻어난 소설들에서는 죽음을 앞둔 내면의 독백이 절실하다. 소설을 읽으며 어떤 행동이 모두 생각의 발로는 아니라는 것을 종종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은 부르주아의 속물의식인 경우도 없지 않지만 대체로는 하층민의 어쩔 수 없는 적응으로 보인다. 멕시코 혁명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당당한 혁명가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속물 같은 혁명가, 그리고 그들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여성의 모습도 그렇다. 그는 다섯 차례나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을 정도로 여성에 관한 의식이 당당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소설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비판하고 있다.
읽는 게 수월하지 않았다. 시대적 배경이나 장소 역시 낯설었지만, 길게 이어진 심리에 관한 묘사를 따라가며 인물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오히려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인물을 잘못 파악하거나, 혹은 그 인물의 말이나 심리를 반대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었다. 포터의 소설이 단순한 시간 때우기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