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를 통해 본 근대 조선

최성락, 『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by ENA

최근에 가끔씩 100여 년 전의 외국인의 조선 여행기를 읽었다. 단순한 관심이다.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른, 그들의 생각과 시각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조선의 민중을 아끼고, 그 저력을 인정하는 책도 있지만, 더럽고, 도무지 가망 없는 조선을 비아냥거리는 책도 있다. 다들 자신의 시각에서, 제한된 경험을 통해 서술했다. 그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통적으로 헐벗은 산하(山河)를 언급하는 것도 기억에 남는다(이 책에서도 바로 그것을 지적한다).


최성락은 그런 개인적인 경험을 통한 근대 조선의 모습 말고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본 근대 조선의 모습을 알아내고자 『이코노미스트』지를 뒤졌다. 1943년에 창간한 『이코노미스트』는 영국의 잡지이지만 당시부터 전 세계의 상황을 전하고 있었고, 특히 자유주의적 입장이지만, 대단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는 장점이 있다. 최성락은 바로 그 『이코노미스트』를 통해 근대 조선의 단면을 그리고, 그들의 시각이 우리와 어떤 점이 달랐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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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를 뒤졌다고 했는데(일본 등에서), 그래서 조선에 관한 자료를 무더기로 찾아낸 것은 아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들의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청이나 일본, 러시아를 다루는 데 곁다리로 가끔씩, 아주 가끔씩 등장하는 경우가 있었을 뿐이다. 그래도 그 작은 실마리를 통해 본 조선의 모습은... 솔직하게 비루하다. 조선 관리의 부정부패야 인정할 수 없다지만, 그것을 바로잡을 의지도 없었다는 인식에는 절망적이다. 그러니 한일 강제병합 시 오히려 조선 민중에게는 도움이 될 거라고 쓰지 않았겠는가? 이래도 저래도 폭압적인 정권에 시달릴 바에야 좀 더 근대적인 시스템을 만들어간 일본에게 혜택을 볼 것이라고 봤던 것이다. 물론 그런 시각은 당사자의 시각이 아니니 무시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한일 강제병합 시에 처절한 저항이 없었다.


『이코노미스트』를 통해서 본 조선은, 아니 조선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각축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냉정한 세계 질서를 깨닫게 한다. 그러니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도 안중근의 이름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이토 히로부미의 삶만 길게 소개하는 상황이 된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세계 정세에 의도적이든, 어쩔 수 없었든 눈을 감았던 19세기 말, 20세기 초 조선 통치자, 조선 지식인의 실수와 무지를 반복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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