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는 이 소설을 10년 가까이 구상했다고 한다. 알제리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 오랑(실제로 존재하는 도시이고, 카뮈가 이 도시에 잠깐 머물 때 페스트가 발생했다고 한다)에 페스트가 창궐한 이후, 도시가 폐쇄되면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반응을 그려냈다. 특히 코로나 19 팬데믹은 이 소설에 대한 관심을 더욱 크게 불러일으키고 많이 팔리고 읽혔다.
소설에서 다루는 내용을 보면, 어쩌면 이렇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인간의 본성은 당연한 것이고, 전염병에 대응하는 인간의 태도 역시 그렇다. 정부의 초기 대응에서의 우왕좌왕하는 모습, 언론을 통한 통제와 가짜 뉴스, 일부의 도덕적 해이와 또 그에 대비되는 숭고한 희생, 장기화되는 질병 통제로 인한 무기력, 나아가 우울증 등등. 카뮈가 소설에서 중심에 두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선량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보면 선량하지만, 그 선량한 사람들이 군중이 되었을 때는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모른다. 그게 커다란 긍정적 에너지가 되어 위기 극복의 힘이 될 수도 있지만, 전혀 그 반대의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카뮈는 대체로 부정적 상화에 맞서는 긍정적 인간 군상을 그려내고 있지만(코타르 같은 인물을 제외하고는), 그 역시 아마도 그런 상황을 배제하지는 않았을 걸로 보인다.
이 소설이 전염병에 맞서는 공동체적인 희생 정신을 그린 것이라든가, 혹은 이른바 카뮈가 ‘갈색 페스트’라 부른 나치에 맞선 유럽 레지스탕스의 저항을 그린 것이라든가 하는 여러 분석은 다른 데서 찾기로 하고, 나는 소설에서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만 추려 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페스트 증상에 관한 놀라울 정도로 생생한 묘사다. 아마 지금의 의사들은 페스트를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쩌면 이 소설을 통해서 페스트의 증상을 배우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목의 림프샘과 사지가 부어올랐고, 옆구리에는 거무스름한 반점 두 개가 번지고 있었다.”와 같이 초기 증상에서 시작하여, “마비, 탈진 증세, 눈의 충혈, 구강 오염, 두통, 사타구나의 멍울, 극심한 갈증, 정신착락, 전신에 돋는 반점, 몸 안에서 느껴지는 찢어질 듯한 통증”과 같은 증세의 진전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마 카뮈가 상당히 자세히 조사한 결과이겠지만, 다음과 같은 죽음의 장면에 대한 묘사는 그가 직접 페스트 환자를 지켜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바로 그때 아이가 마치 위장이 물어뜯기기라도 한 것처럼 가냘픈 신음 소리를 내며 다시 몸을 구부렸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그 몇 초 동안 아이는 몸을 접은 채 가만히 있더니, 연약한 몸이 페스트의 광풍에 꺽이고 반복적으로 밀려오는 신열의 폭풍에 무너지듯 오한으로 떨면서 경련을 일으켰다. 돌풍이 지나가자 몸이 약간 이완되었고, 열이 물러가면서 헐떡이는 아이를 독성이 있는 축축한 모래사장 위에 던져놓은 것 같았다. 그곳에서는 휴식이 벌써 죽음과 같았다. 열이 타오르듯 물결치며 세 번 째로 밀려와 아이의 몸을 약간 들어 올리자, 아이는 몸을 바짝 웅크렸고, 자신을 태우는 불꽃 때문에 공포에 휩싸여 침대 밑으로 파고들면서 시트를 걷어차고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불이 붙은 듯한 눈꺼풀 밑에서 굵은 눈물이 솟아나와 납빛 얼굴 위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발작이 끝나자 아이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뼈만 남은 두 다리와 48시간 만에 살이 다 녹아버린 듯한 두 팔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엉망으로 헝클어진 침대 위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듯한 괴상한 자세를 취했다.”
다음은 도시의 가장 밑바닥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막노동이나 무덤 파는 인부들이 페스트로 많이 사망하는 데도 이런 인력을 구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서술자(결국은 의사인 리유)는 나중에야 깨닫는다. 페스트 때문에 경제 활동이 중단되면서 실업자가 많이 생기고, 실업자들은 어쩔 수 없이 목숨을 내걸고 비어 있는, 위험한 일자리라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역시 우리의 3년 동안도 그러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서술자는, 결국은 카뮈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그 시기부터 사람들은 궁핍함이 실제로는 공포보다 더 강력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위험 정도에 따라 보수를 지불했기 때문에 그 사실이 더욱 두드러졌다.”
그리고 또 하나는 타루가 리유에게 고백하는 이야기다. 그가 하는 이야기는 정말 길고, 그래서 조금은 지루하기까지 한데 거의 끝부분에 번쩍 뜨이는 말을 한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이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해보게 되는데, 모두가 그 무시무시한 질병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감염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감염시킬 수도 있다는 인식. 바로 이것이 그래도 3년간 우리를 지켜오지 않았나 싶다. 나만이 홀로 깨끗하며, 정직하며, 죄를 짓지 않았다는 인식은 공동체를 황폐화시키고, 서로 불신하게 만든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역시 타루의 말로 “선생님의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인 것입니다.”(이 말은 로버트 자레츠키의 책(『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이다』에서 우리말 제목으로 쓰였다. 이 책에서도 『페스트』를 다룬다)라는 말과 함께 언제든 우리로부터 새로운 전염병이 나와 또 우리를 위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