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바턴, 혼자가 아니었던 삶을 기억하다

엘라자베스 스트라우트, 『내 이름은 루시 바턴』

by ENA

작가 루시 바턴은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하고, 몇 편의 단편을 문예지에 실은 작가이자,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이던 과거에 아홉 주 동안 병원에 입원한다. 소설은 바로 그 시간을 중심으로 회고한다. 뉴욕의 크라이슬러빌딩이 보이는 병실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뜻밖에도 자신의 침대 곁에 엄마가 앉아 있다는 것을 본다. 멀리 중부의 시골 마을에서 온 엄마는 닷새 동안 간이침대도 이용하지 않고, 의자에만 앉아 있게 된다. 비행기도 처음 타본 엄마였다. 모녀는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는 거의 과거 그들 주변에 있던 이들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런 시절 끔찍하게 가난한 집에서 자랐던 루비 바턴에게는 아마도 잊었던,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였다. 가난은 불편하기도 했지만, 부끄러운 것이었다. 기억에서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집에 가기 싫어 최대한 학교에서 숙제를 하고, 책을 읽었고, 그 덕분에 성적이 좋았고, 대학엘 갈 수 있었고, 그래서 그 가난한 집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엄마가 기억해내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루시 바턴으로 하여금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었으며, 또한 현재를 인식하는 과정이 되었다. 과거는 되살아날 뿐만 아니라 재해석되었다. 그 끔찍하게 가난한 집에서의 일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탈출한 이후의 기억 역시 재구성되어 있었다. 과거는 현재의 관점에서 다시 기억되고 있다. 루시 바턴은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다 ‘선명하게’ 알게 된다.


루시 바턴은 자신이 ‘루시 바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지금은 거의 교류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아빠, 엄마, 오빠, 언니와의 관계가 자신을 만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순간 나는 우리의 뿌리가 서로의 가슴을 얼마나 끈질기게 칭칭 감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195쪽)


그러나 소설은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그런 쪽으로 이끌어가지 않는다. 한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다. 감동적이지는 않지만,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온,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한 순간 한 순간이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를 쓴 한 사람의 이야기다. 한 여성의 이야기지만, 여성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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