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과 관련한 소설을 찾아 읽는 가운데 발견한 흥미로운 책이다. 비록 전문적인 번역가가 번역한 게 아니라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이 번역한 것이라는 점을 알고는 조금 의심이 들었지만 읽어본 바로는 그다지 흠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결핵을 다룬 작품 둘, 스페인 독감을 다룬 작품 둘, 한센병, 즉 나병을 다룬 작품 둘, 그리고 매독을 그린 작품하나 등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을 실었다. 이 여덟 편의 작품이 감염병을 다룬 방식은 다르다. 어떤 작품은 본격적으로 감염병, 또는 감염병에 걸린 사람을 다루고 있는가 하면, 어떤 작품은 배경이나 일부 소재로 차용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두 감염병에 관해서 상당히 자세히 묘사하고 있으며, 당시의 시대 상황(19세기 말부터 1930년대까지)을 잘 서술하고 있다. 감염병에 대해서 어떤 개인과 사회가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물론, 그 감염병에 관한 사회적 편견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말미의 이 강의를 진행하고 정리한 김효순 교수의 해설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여러 작품들이 작가 개인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는 한센병에 걸린 이가 주인공으로 격리 시절에서의 경험과 심리를 묘사한 작품을 쓴 호조 다미오다. 그는 일본 최초의 한센병 작가라고 한다(식민지 조선의 경성에 태어나기도 했다). 한센병 환자로서 환자 수용시설에서 작품 활동을 했고, 24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가 한센병 환자였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읽으면서도 한센병 환자의 상태뿐만 아니라 심리 묘사가 매우 상세하고 섬세하다고 느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육체와 정신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이미 한센병이 나균에 의한 감염병이라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사회적인 인식과 국가적인 차별에 좌절한 작가의 심정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밖에도 히로쓰 류로의 <잔국(殘菊)>, 모리 오가이의 희곡 <가면>도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고 하는데, <잔국>이 결핵에 걸린 젊은 부인의 감정 묘사가 특출나다면, <가면>은 결핵 환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 대해 환자(더 정확히는 의사이자 환자)의 반응이 흥미롭다. 특히 결핵균에 관한 염색법 등에 대한 내용은 작가가 의학부 출신에 군의관을 역임했으며, 로베르트 코흐에게서 배운 적이 있다는 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일본의 대문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난징의 그리스도>는 매독에 걸린 어린 매춘부의 믿음과 오해를 다루는데, 아쿠타가와는 매독이 아니라 스페인 독감에 걸린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매독은 많이 감추는 질병이었으므로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타인에게 옮기면 본인은 낫는다는 설정은 분명 감염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지만(작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매독에 대해 절박한 상황을 나타낸 것이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비하면 스페인 독감을 다룬 소설들은 다소 다양한 측면을 보여준다. <유행성 감기>는 시가 나오야의 스페인 독감 감염되었던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는데, 이 질병에 대한 상류층의 혐오와 대응 방식이 잘 드러나고 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길 위에서>는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감염병에 걸릴 확률을 높여 아내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다뤄진다. 그런데 여기서는 스페인 독감보다는 티푸스(Typhus)가 더 중심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기쿠치 간의 <마스크>는 감염병에 대응하는 개인의 심리 변화가 잘 드러나는데, 코로나-19 상황에서의 우리가 마스크를 대하거나, 혹은 공공시설 이용 시에 가졌던 여러 가지 마음과 매우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