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아버지가 한국인이라는 것부터 눈의 띤다. 그 사실은 이 소설을 읽기로 택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한국어판 서문을 읽기 전에는 몰랐으니까. 그리고 책의 내용과도 전혀 관련이 없다. 인물도 모두 미국인이며(가끔 대화 속에 러시아, 북한이 등장하긴 한다), 무대도 미국 중부다.
이야기는 두 개의 축이 중심이다.
하나는 신천국(New Earth)라는 사이비 종교집단에 관한 것이고(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를 떠올린다), 또 하나는 갑작스럽게 발생해서 미국을 무법천지로 만들어버린 감염에 의한 급성 조기치매다. 2019년에 발표된 이 소설에서 더 주목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상당 부분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사이비 종교집단 이야기와 감염병 이야기는, 중간 이후 당연히 통합된다.
소설에서 다루는 급성 조기치매는 실제로 최근에 벌어진 몇 가지 사건에 기초하고 있다. 하나는 기후변화로 인해 시베리아의 동토층이 해동되면서 탄저균이 나와 순록을 몰살시킨 사건이고, 또 하나는 러시아의 과학자가 시베리아 동토층에서 발견한 바실러스(Bacillus)에 속하는 세균이 함유된 물을 먹으면 오래 산다고 주장하며 먹은 괴기담 같은 이야기다. 그리고 프라이온이 있다. 흔히 광우병의 원인이라고 알려진, 세균도, 바이러스도 아닌 감염체다. 뇌가 스펀지 모양으로 변해버리는 이 질병은 쿠루족에서는 죽은 이의 뇌와 척수를 먹으면서 퍼졌다고 한다. 소설에는 미국 전력망에 대한 사이버테러에 대한 우려도 녹아 있다. 복잡하게 얽힌 전력망은 견고한 것 같지만, 의외로 허약하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여러 과학적인 근거와 사건들을 엮어, 작가는 프라이온(이것이 바이러스의 일종인 것처럼 여기는 것 같은 느낌은 있지만)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재조합을 통해 급속도로 치매 증상을 나타내게 하는 신종 감염병이 등장했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이 이용하려 하고, 미국의 전력망이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으로(실제로 그런 건지는 모른다. 소설 속에선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상황도 그려내고 있다. 너무나도 무기력한 상황이다. 이것을 헤쳐나가는 인물은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탈출한 후 강박증을 가진 젊은 여성(윈터)이다.
묵시론적 얘기다. 그런데 상당히 실제로 벌어진 일들을 엮었기 때문에 너무나 현실적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현실이 묵시론적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비슷한 상황을 우리는 이미 코로나-19로 겪었기 때문에 이 소설의 상황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조금 현실보다 더 멀리 나갔다고 여겨지는 지점은 ‘노아’(그렇다. 이름이 노아다)가 사람들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탈출해서 지내는 곳을 만들어냈다는 부분이다. 다름아닌 ‘노아의 방주’다. 물론 21세기에 맞게 변주는 시켰지만, 누구나 노아의 방주를 연상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소설은 결국 ‘희망’을 얘기해야 한다는 작가의 말을 떠올려보면, 그게 과연 희망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