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공간이 만든 공간》
한참을 에두른다. 거의 절반에 이를 때까지 동서양 문화의 차이에 대해서 비교하고 있다. 강수량 1000mm를 기준으로 벼농사와 밀농사로 나눠진 동양과 서양은 농사의 성격상 한쪽은 집단주의가, 다른 한쪽은 개인주의가 심어렸다. 그리고 그런 성향은 깊게 뿌리내려 건축에까지 이어져 동양은 공간을 중시하여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건물을, 서양은 벽 중심의 건물을 짓게 되었다. 대체로 이런 이야기다.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의 많은 저서, 논문들이 밝혀온 바다.
그런데 이게 건축가 유현준의 전공은 아니다. 그래서 그렇게 정교한 논의는 아니다. 다만 왜 그런 비교를 길게 하는지는 분명하고(이미 눈치를 챌 수 있다), 그 의도에 걸맞은 정도의 깊이를 갖추고 있다.
그런 비교가 끝날 때쯤, 동양의 문화가 서양에 소개되면서 그것들을 받아들여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나가는 장면이 펼쳐진다. 자연의 모습을 닮은 정원과 도자기를 싼 종이에 함께 딸려왔던 그림을 받아들인 고흐의 미술 등이다. 그리고... 당연히 건축으로 넘어간다.
한계에 다다랐던 서양 건축은 철근과 엘리베이터와 같은 기술과 동양의 공간적 특성을 접목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 그 인물이 바로 미스 반 데어 로에와 르 코르뷔지에다. 그들의 건축은 동서양의 문화가 섞이면서 새로워졌다. 바로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서 동서양의 차이를 길게 서술했고, 그 차이가 비로소 20세기 들면서 건축에서 융합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루이스 칸과 안도 다다오에 이른다. 루이스 칸은 동양의 공간을 접목시킨 건축에서 나아가 과거의 유전자를 끌어온다. 그리고 안도 다다오는 시간을 공간화시킨다. 바로 융합의 힘이다. 지리적 교배, 시간적 교배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새로이 접목시키고 융합시켰을 때 새로운 건축, 새로운 문화,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감한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
미스 반 데어 로에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건축이 동양의 건축을 어떻게 받아들여 혁신을 일으켰는지를 보여준다. 그 구조의 혁신에 대해서는 잔뜩 얘기하지만, 그 건물이 어디에 무엇을 위해 지어졌는지, 그 목적에 걸맞는 구조를 갖추었는지, 지금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즉 건축의 본질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하지 않는다. 안도 다다오의 교회 건물에 대해서 시간을 어떻게 구조에 녹여 냈는지를 사진과 함께 보여주지만, 그런 구조가 교회라는 건물의 본래 목적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 건축이 단순한 예술품이 아닌 것은 기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미스 반 데어 로에와 르 코르뷔지에, 안도 다다오의 건물은 예술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훌륭했지만, 건축의 목적에도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에 인정받고 본받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건 당연하다고 해서 생략했을까? 아무래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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