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지만, 대체로 일반적으로 우리가 받아들이는 유전학(genetics)을 넘어선 어떤 표지에 의해 유전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받아들이는 유전학이란 유전자가 우리의 형질을 결정하는 데 전적인 역할을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어떤 유전자를 가졌는지(즉, 부모로부터 각각 어떤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에 따라 형질이 결정되는 것이다. 반면 후성유전학에서는 DNA에 뭔가 달라붙거나, 혹은 DNA를 조절하는 어떤 물질의 변형을 통해서 유전 현상이 조절된다고 여긴다. 여기서 말하는 표지(marker)란 흔히 메틸화(methylation)이나 아세틸화(acetylation) 같은 것을 말한다.
후성유전학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세기 초이지만, 이것이 진지하고 유의미한 과학의 분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이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서는, 그리고 점점 시간이 갈수록 아주 각광 받는 연구 분야가 되었다. 단순히 생물학 분야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연구가 아니라, 의학, 심리학, 영양학, 철학 등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의미가 과대 포장되어 만병통치약, 혹은 잘못된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되는 데 후성유전학이라는 용어가 쓰이기도 한다.
심리학자이자 뇌신경과학자 데이비드 무어는 바로 이 후성유전학이 무엇을 알아 왔으며, 그래서 어떤 기존의 관점을 뒤집었는지, 그리고 미래의 전망은 어떤지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행동 후성유전학(behavioral epigenetics)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냥 후성유전학의 대강의 모습을 아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수준의 책이다.
우선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유전과 진화의 작동 방식에 대해서 쓰고 있다. 그러나 곧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유전 현상, 그리고 그 메커니즘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 예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란성 쌍둥이임에도(그러니까 모든 유전자가 동일하다) 유전적인 것이라고 알려진 질병에 걸릴 확률이 달라지는 경우다. 이렇게 유전에 뭔가가 더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과학자들이 알아내기 시작한 것이 바로 히스톤이 조절하는 방식, 그리고 DNA에 메틸기를 붙거나 떨어지고, 혹은 아세틸기가 붙고 떨어지는 것 등을 통해 유전자가 켜지고, 꺼지고 한다는 내용들이다.
그렇게 후성유전적 조절 방식은, 즉 메틸화나 아세틸화는 경험을 통해서도 이뤄지기 때문에 경험이 유전자에 새겨진다고도 볼 수 있으며(이게 책 제목이 되었다), 부모의 경험(이를테면, 무엇을 먹는지, 어떤 스트레스를 받았는지)이 자녀의 유전자에도 전달된다고 볼 수 있는 증거들이 쌓이고 있다. 이러한 발견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자녀의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엄마의 경험이 자녀에게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경험도 영향을 주며, 심지어 조부모의 경험이 손주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내용들을 데이비드 무어는 무척 쉬운 용어와 서술 방식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쉬운 방식만을 가지고는 어떤 발전을 이루기는 곤란한 점을 인식하는지, 중간중간에 ‘심층 탐구’라는 장을 통해 보다 자세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심층 탐구도 좀 아쉬운 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쉬운 부분을 통해서는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심층 탐구를 통해서는 후성유전학 발전의 전문적인 면을 엿보기에는 충분하다.
데이비드 무어는 기존의 유전학적 결정론을 비판하고, 후성유전학적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모르는 것이 정말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얄팍한 후성유전학의 성과를 호도해서 어떤 것을 먹으면, 어떤 행동을 하면 금방 병을 치료하고, 무언가가 바뀔 것이라고 선전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후성유전학의 발전은 눈부시지만, 아직까지는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후성유전학이 밝혀낸다면 정말 대단한 성과를 낼 것이 기대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 가능성에 불과하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다.
이 책은 2015년에 나온 책이다. 그로부터 ‘무려’ 8년이 지났다. 사실 이 점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생물학에서, 특히 최첨단의 생물학 분야에서 이만큼의 시간은 어마어마하다. 데이비드 무어는 후성유전학의 미래에 대해서 기대감을 표하면서도 아직은 모자란 점을 인정해야만 했는데, 그가 기대감을 표현한 미래를 후성유전학은 한참 앞당기고 있다. 과학자들의 땀이 그 미래를 앞당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데 있어 후성유전학의 지금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후성유전학의 기본을 이해하는 데 써야 할 것이다. 후성유전학의 현재는 이 책에서는 까마득한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