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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를 읽다

브램 스토커, 《드라큘라 (상)》

by ENA

‘드라큘라’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드라큘라 백작을 만들어 낸 브램 스토커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드라큘라에 관한 영화, 혹은 거기서 파생된 흡혈귀에 대한 영화는 본 사람은 무수히 많지만, 그 시초가 된 소설을 읽은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이제야 읽는다. 브램 스토커라는 이름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드라큘라》를 모두 읽고 이에 대한 독후감을 쓸 것이므로 상권만을 위해서는 몇 가지 인상에 대한 간단한 메모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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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소설의 형식 자체로 대단히 매력적이다. 조너선 하커의 일기, 그의 약혼자이자 부인이 된 미나의 일기와 편지, 미나의 친구 루시의 일기와 메모, 편지, 그밖의 수어드, 아서 등의 일기와 편지, 반 헬싱의 편지, 그리고 신문 기사 등등을 동원해서 이야기들을 모자이크와 같이 연결하고 있다. 이것을 연결하는 매듭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따로 없다. 설명 없이 이들의 일기, 편지, 메모, 전보, 신문 기사 등을 통해 전개되는 소설의 형식은 지금 시점에서도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두 번째로는 소설이 미스터리 구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도 놀랍다. 독자들로 하여금 벌어지는 일들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게 하면서도 다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점점 벌어지는 일의 심각성이 고조되고, 또 정체를 조금씩 드러낸다. 그리고 반전.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조너선이 어떻게 드라큘라 성을 빠져나왔는지에 관한 것이다. 다시 그 부분을 읽어보는데, 탈출의 전모는 알려주지 않는다. 누구도 그걸 알려줄 수는 없다. 조너선밖에는. 그러나 조너선은 탈출 이후 한참 후에야 먼 지역에서 발견되었고, 많은 기억을 잃은 상태였다. 그가 어떻게 탈출했는지 궁금한 이유는, 그를 어떻게 살아남았는지(혹은 왜 살려두었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루시를 살리기 위해 반 헬싱과 수어드는 여러 차례 수혈을 감행한다. 1897년에 발표된 소설이니 수혈의 효과는 알고 있었으되, 혈액형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은 때다(혈액형이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1900년에 와서였다). 수혈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적지 않은 경우에 수혈 도중에, 혹은 수혈 후에 쇼크로 죽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수혈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 아주 운이 좋은 경우라 할 수 있다. 또 이 소설에서의 수혈은 공여자와 수여자를 직접 연결하여 피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혈장만을 수혈하는 방식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개발되었고, 보관하는 기술도 그렇다.


상당히 흥미로운 점 중에 하나는 소설에 다름 아닌 ‘조선’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퀸시 모리스가 아서 홈우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의사 잭 수어드와 셋이서 조선(원전에는 Korea라고 되어 있는 모양이지만, 시기상 대한제국 이전이다)에 만났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110쪽). 아마 작가가 조선이라는 나라를 잘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같은 편지에서 대초원이라든가, 남태평양의 섬, 티티카카 호에 관한 얘기를 함께 하는 것을 보면 조선은 아주 오지를 상징한다. 그만큼 그들이 세계 곳곳을 누볐다는 얘기다. 딱 그만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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