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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 May 09. 2018

[ 버킷리스트 ]


3년전 즈음에, 직원 모두가 병원 엠티를 갔습니다. 내가 무언가 그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 다들 그 즈음 유행하던 ‘버킷리스트’를 써보라고 했지요. 20대 후반의 여직원들에게 '소망리스트'란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키우는 고양이가 죽을때 옆에 있어주기, 엄마 모시고 해외여행가기, 혼자서 용기있게 영화보러가기, 뮤지컬 보러가기 등, 소박하고도 손에 닿을 듯한 리스트였지요. 그 때까지 한번도 연극도, 뮤지컬도 본 적이 없는 친구가 있었는데, 제가 그 후로는 나서서 공연소식을 알려주고 여러모로 도움도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는 며칠전, 다시 3년만에 버킷리스트를 한 번 써보라고 했습니다. 한 친구가 아직도 그 3년전의 버킷리스트를 집 안 화장대에 걸어두고 하나씩 그어가며 수행해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새로이 다시 제출하라고 하니, 또 새로운 버킷리스트들이 등장합니다. 이제 결혼도 한 친구가 있고,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달라지는게 당연하지요.

부모님 자주 찾아뵙기, 신랑 하루한번 칭찬하기, 아기에게 책 많이 읽어주기, 책 한권 출판하기, 게르니카 작품보기, 시스티나 성당에서 언니랑 천지창조 아담의 탄생 포즈 취하기, 세상의 모든 교통수단 타보기(말도 타고), 노래 한곡 작곡하기, 제천에서 60미터 번지점프 해보기...

직원들이 건네준 리스트 중에서, 어쩐지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없습니다. 이제 저는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인지, 어떤 욕망도 거세된 무욕의 인간이 되어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를 보면, 죽기전까지 무엇을 해봐야겠다는 일종의 성취리스트라는 생각이 듭니다. 짧아지는 해를 등에 지고 퇴근을 합니다. 이런저런 상념속에서 어린 아기들과 놀다가 9시 반이 되면 씻기고 재웁니다. 같이 누워서 두런두런 하루에 있었던 어린이집과 유치원 친구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듭니다. 다시 12시정도에 깨어, 미국에서 사업의 실패로 마음이 지옥인 후배에게, “그렇다고 자살이라니, 그런 생각은 말아라.” 별 도움도 되지않는 위로 전화를 한시간정도하다가 끊고서, ‘나는 무슨 버킷리스트가 있을까..’ 생각을 정리 합니다.

30년정도 전의 일이네요. 설거지하던 나의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민석아, 너 지금 중학생이지? 너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엄마 세계여행 시켜줘라? 엄마는 꼭 너가 번 돈으로 세계여행 하고 싶어! 비행기도 태워줘~! 하하하.”

여러 번 저에게 농담 반 진담반으로 말씀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말기암으로 투병하실 때에도 역시 그 생각이 났습니다. 힘들어 돌아누워계신 어머니를 향해,

“어머니, 내가 세계여행 시켜드릴까?”

바보같은 말이 내 입에서 나옵니다. 그냥 그 말을 하고싶었습니다.

“아.. 니.. 이제.. 내가.. 몸이 힘들어서.. 그냥 쉬었으면 좋겠어.. 그냥 어려운 사람들 만나면 그 돈으로 밥도 사주고 하거라..”

“......”

그래서인지, 나의 자식들에게는, 아무런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늘 아빠는 만족한다. 아쉬운 것이 없다. 늘 감사한다. 너에게도 바라는 것이 없다. 그저 온전히 너의 인생을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말해두어야, 아이들이 50년이 지난 뒤에도 저를 떠올리면 슬픈 감정이 들지 않을 것 같거든요.

몇 달전에 마음 먹은 것이 있습니다. 죽기 전까지 천 명의 사람에게 인상깊은 선행을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이 제게 보내오는 엽서나 편지를 모으는 것이 저에게 가장 큰 만족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힘든 이의 가방을 들어주는 일이던, 사업에 실패하여 낙담한 이에게 막걸리를 한잔 사주는 일이던, 이제 막 개업하려는 후배에게 진료의 도움을 주는 일이던 말입니다. 물론 좀 더 거창한 것을 꿈꾸고는 있지만, 일단은 소박하게 꾸려가기로 했습니다. 하나하나 노트에 적어서, 1000명에게 인상적인 도움을 주고나면, 제 인생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인생이었다고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인생에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고맙다고 인사를 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위대한 버킷리스트는 산부인과 원장님께서 지니고, 실천하고 계십니다. 일년에도 여러번 네팔에 나가시고, 하루에 잠도 5시간정도 밖에 못자고 차로 3-4시간씩 이동하면서 아픈 사람들에게 약을 나누어줍니다. 산부인과 원장님이 만난, (아래의 사진)지난 6월 2차 지진때 만난 히말라야산속 반띠본달의 14살 '수니타'가 좌측 눈의 종양을 앓고 있었습니다. 팔방으로 알아보았으나, 눈종양은 수술이 당장 어렵고 6개월간 우선은 렌즈로 치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력은 약하지만 예쁜 얼굴에 미소가 행복해보입니다. 다 저의 페이스북 친구분들이 보내주신 후원금과, 기타의 다른 산부인과 원장님의 지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 그리고 권샘이 병원을 운영하면서 나온 수익의 많은 부분을 사용하여 이루어진 일입니다.

산부인과 원장님은 미래에는 그곳의 사람들과 여생을 함께하며 의료봉사로 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를 가지고 계십니다. 이번 수니타의 눈 수술은, 눈의 종양을 제거하고, 인공안구를 넣어 준 것이며, 인공안구의 재료비만도 90만원이 넘고, 왕복 교통비와 안내자비용도 100만원이 넘게 들었습니다. 수술은 네팔의 봉사로 유명한 영향력있는 안과의사분께서 무료로 해주셨습니다. 네팔에서는 집 한채 값이라고 하네요. 여성인권이 없는 나라에서, 수니타는 그나마 다행입니다.

인생은 성취하려고 사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최근의 생각으로는 ‘성숙’하려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에게 다가오는 불행도, 불운도, 그럭저럭 견뎌내기가 좋은 것 같습니다. 비뚤어진 성격에, 뭐하나 제대로 믿는 종교도 없어서 그간 불만도 많은 인생이었는데, 이제는 나에게 벌어지는 보다 많은 일들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죽기 전까지 '나는 꼭 무엇을 갖고 말거야' 하는 것보다는, '경험해 볼거야'가 더 좋아보이고, 그것보다는, '마음의 모난 구석을 다듬을 거야' 하는 것이 저는 더 좋아보입니다. 더 용기가 있다면 세상의 모난 구석을 다듬는데 힘을 쓰면 더 좋겠지요.

네팔의 '수니타'에게 선명하게 드러나는 세상이 오히려 어둡게 보이지 않을런지 걱정입니다. 타인의 버킷리스트가 이미 나에게는 흔한 일이 되어버렸음에도, 저는 스스로 감사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17세 소녀 '레베카'의 이야기를 적습니다. 그 소녀의 버킷리스트에는 ‘생명 구하기’라는 것이 있었답니다. 친구와 걷다가, 달려드는 자동차를 보고 친구를 힘껏 밀어제치며 남의 생명을 구하고, 본인은 생명을 잃었습니다. 소녀 '레베카'의 아름다운 버킷리스트의 실현을 보고, 레베카의 다른 친구는 누군가에게 골수기증을 하기로 또 마음을 먹게됩니다. (댓글로 기사링크를 걸었습니다.)

영국의 템즈강의 다리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고 합니다. 추운 겨울, 뛰어내린 사람은 물에 빠지면 허우적 대면서 다시 살아 나오려고 애쓰다가 손으로 긁어서 손톱이 다 망가진 채로 건져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렇지 않고 손톱이 깨끗한 채로 발견되는 시신들도 있다고 합니다. 다시 살고자 하지 않았던 안타까운 사람들이죠. 그렇게 물에 빠진 가운데서도 본능적으로 다시 살려는 의지를 억누르는 사람들은, 주로 경제적인 이유로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추운 겨울의 경제적 파산은, 죽음보다도 무서운 것입니다.

저의 버킷리스트에는 하나하나를 더 가지려는 욕망보다는, 어차피 채워지면 허탈해질 그 욕망보다 높은 가치를 적어내려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버킷리스트를 생각해봅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사는 인생이 될 것인가 고민이 많아지는 가을입니다. 내년이면 40대 중반, 헛되이 써 버린, 지난 날의 청춘과는 점점 멀어지고, 버킷리스트를 완수할 시간은 조금씩 줄어드는 생의 한 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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