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모리 가즈오 <왜 일하는가>
적성, 재능, 또는 천직.
나는 이것들을 방정식의 해 같은 것으로 여겼다. 이미 정해져 있어서 찾아내야 하는 것.
찾아내기만 하면 그곳에 남은 인생을 몰두하기만 하면 되니, 이 얼마나 효율적인가. 그렇게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천직을 알아내겠다는 일념으로 휴학까지 해 가며 대학교 1학년과 2학년을 통으로 바쳤다.
그럼에도 나는 방정식을 풀지 못했다. 오히려 가면 갈수록 '애초에 해가 존재하기는 하는가?'라는 회의에 사로잡히기만 했다. 분야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너무나도 즐겁게 몰입했던 일이 있는가 하면, 적당히 견디는 것조차 힘겨웠던 일도 있었다. 그 속에 패턴이 있을 줄 알았는데,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알아볼 수 없는 형체로 변해갔다.
그러다가 이나모리 가즈오 씨를 만났다. 정확히는 그의 저서 <왜 일하는가>를 읽었다. 그 속에 적힌 그의 일화는 내 믿음에 대한 완벽한 반례였다.
앞서 말했듯 나는 처음부터 파인세라믹을 연구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당시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유기화학을 전공했지만, 경기 불황으로 실업난이 극심했던 시기라 좀처럼 취업이 되지 않았다. 지방대생 신분으로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힘들었다.
결국은 교수님의 도움으로 고압초자를 만드는 무기화학 계열의 제조 회사인 쇼후공업에 겨우 입사했다. 내가 공부한 분야와는 전혀 다른 일이었음에도 그런 시기에 취업을 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했다. 적어도 입사 초기에는 그랬다.
파인세라믹 개발은 미지의 분야였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참고할 만한 문헌이나 자료를 찾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회사의 자금 사정도 좋지 않아서 연구 설비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고 상사나 선배도 없이 이 모든 연구를 혼자 해나가야 했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는 도무지 내 일에 애정을 갖기가 어려웠다. 회사가 나를 골탕 먹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학창 시절 중학교 입학시험에 낙방하고, 원하던 의과대학 입시에도 실패해 지방대에서 유기화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것도 가난한 형편 때문에 당장 취업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적성을 고려해 유기화학을 공부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막상 입사해 보니 아무런 인프라도 없는 무기화학 업무를 시키고 있었다.
파인세라믹에 대한 기초 지식도 없었기에 우선은 대학교 도서관에 가서 기본서부터 들여다봐야 했다. 복사기도 없던 시절이어서 관련 업계의 신문과 잡지, 그리고 대학에서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간행물을 과거에 발행한 호까지 샅샅이 살펴보고 중요한 부분을 찾아 부지런히 노트에 베껴 적었다. 월급도 제때 받지 못했지만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 비싼 연구 서적을 구입하고, 미국 세라믹협회 논문을 구해 사전을 기고 번역하면서 파인세라믹에 관한 기초 지식을 습득했다. 그렇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실험을 하고, 겨우 문제 해결에 실마리를 찾아내 새로운 실험에 적용해 가며 지식을 쌓았다. 당시 나의 일은 그런 착실한 작업의 반복이었다.
내 일은 따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연구소 안에서 실험을 하고 다시 도서관으로 달려가 공부를 하는 일이 매일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어느새 나는 파인세라믹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파인세라믹이라는 소재가 엄청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차츰 알게 되었다. 파인세라믹 연구에 목숨을 바쳐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반쯤은 억지로 맡아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이었지만, 마침내 적극적으로 몰두할 만큼 일이 좋아졌고, 더 나아가 좋고 싫고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어 깊은 의의마저 느끼게 되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천직'은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천직을 '만들어 낸' 이나모리 가즈오는 파인세라믹을 재료로 하는 신제품 개발에 성공하면서 고객사로부터 대량 주문을 받아 망해가던 쇼후 공업을 살려낸다. 이후 교세라를 창업해 자신이 건드려본 적 없는 새로운 제품 개발에 연달아 성공하면서 자본금 3천만 원의 영세한 회사를 연 매출 16조 원의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이 이야기 속에는 풍부한 자금, 우수한 인프라, 훌륭한 인맥, 회사의 전망, 개인의 적성 중 그 어떤 것도 없다. 무엇이든 애정을 담아 오랜 시간 동안 철저한 노력을 쏟다 보면 천직에 마땅한 흥미와 재능을 모두 갖출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물론 당시 이나모리 가즈오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따라서 여러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이 천직이 되어 나의 해자가 되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선택이 아닌 마음가짐과 과정에 오롯이 달려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