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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Dec 07. 2020

탕비실 커피 vs. 테이크아웃 커피

입사한 지 두 달된 인턴이 넌지시 물어왔다.


"블랙커피, 믹스 커피, 심지어 내려먹는 원두커피까지 탕비실에 있는데. 왜 다들 별다방, 콩다방을 가시나요?"


처음엔 말문이 막혔더랬다.

아주 맹랑한 질문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격하게 수긍했다.


그러게.

왜 나는, 옆자리 동료도, 선배도

취향별로 구비되어있는,  탕비실 공짜 커피를 나두고 왜 자꾸 나가서 먹는 걸까. 백 원, 오백 원은 아까워하면서 5천 원짜리 커피를 턱턱. 왜에?








1. 역시 커피는 남이 타주는 커피가 제 맛이라서.



물론 커피값 포함 점심값 좀 줄여보겠다고 야심 차게 노력한 적도 있긴 했다.  


탕비실 담당 직원에게 읍소해 '내 집을 카페처럼'이라는 광고 문구를 대문짝만하게 내 건 유명 프랜차이즈 발(發) 캡슐을 사다 두기까지 했더랬다.  하지만 800원짜리 캡슐은 4천1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그대로 재현해내지 못했다.

그 향, 그 온도, 그 풍미.

제일 아쉬웠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바닐라 라떼, 캐러멜 마끼아또 등 탕비실에서는 흉내 낼 수조차 없는 커피가 당길 때였다.


산처럼 쌓인 보고서 더미 앞에서, 해야 할 일이 빼곡히 적힌 스케줄 표 앞에서 시럽과 드리즐과 크림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나의 기분을 달래줄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신이 내린 선물




2. 회사의 모든 것이 싫다. 그래서 탕비실의 커피도 싫다.



나는 누워 잘 때에도 여의도 방향으로는 절대 돌아눕지 않는다. 여의도에 무엇이 생겼더라, 어디가 좋다더라 해도 퇴근하는 순간 줄행랑치듯 여의도를 벗어나려 발버둥 친다.  퇴근 후 약속도 물론, 무조건 회사에서 떨어진 곳으로 멀리멀리.

회사는 나의 눈물, 회한, 굴욕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금이 발린 커피라도 회사 커피가 맛이 있을 턱이 있는가.

그냥 안 먹고 만다.




탕비실의 이미지.




3. 회사생활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원동력



굳이 커피까지 회사에서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이다. 커피만큼은 내 취향대로, 내가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주제의 대화와 함께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커피 타임은 단순히 '드링킹 커피' 타임이 아니다.  폐에 가득했던 답답한 사무실 공기를 날숨으로 내뱉고 신선한 외부 공기를 들숨으로 받아들이는 시간.  나를 이불에서 일어나게 해 준 유일한 원동력, 5시간 이상 남은 업무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재충전의 시간.


그래서 나에게 커피타임은 회사생활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이유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나간다. 커피를 빨자마자 혈액을 타고 흐르는 카페인의 거센 파워. 그거슨 결코 탕비실 커피 한잔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임엔 분명하니까.  (탕비실 커피는 아무리 먹어도 졸리다)



4. 집에 밥 있다고 배달음식 안시켜 먹는가.


알람에 맞춰 무거운 몸을 일으켜 지옥철에 몸을 구겨 넣고. 출근한다 매일매일. 요즘엔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를 무증상 확진자가 운 나쁘게 내 옆에 서지 않기만을 기도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래서 가끔은  스스로가 너무도 대단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불쌍하고 갸륵한 나에게 아낌없이 초록색 빨대를 선물한다.


건강한 집밥 대신 MSG 마구 친 외식을 택하듯

건강한 지갑을 지켜줄 탕비실 커피 대신 건강한 정신을 지켜줄 테이크아웃 커피를.

바로 나에게, 치얼스~






코로나 19로 테이크 아웃 커피의 매력이 반감된 건 사실이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커피 한 잔을 들고 거리를 배회했다.

날은 춥고 손도 시리고 갈 곳은 없지만 그래도 보고서 가득 쌓인 책상에 앉아 탕비실 커피를 내려 마시긴 싫었다.


육아휴직에 들어 간 친구가 그랬다.

지금 제일 그리운 건 월급도, 동료도 아닌 점심 먹고 쭉 빠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라고.

그래, 지금 내 손에 든 4천원짜리 커피는 누군가에게는 애타게 찾는 나만의 '여유'일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오늘도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으로

무사히 견.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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