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칼퇴는 망했다.

by 권도연


요즘 직장에서는 '일 하지 않는 사람'이 대세라고 한다.


열심히 일하고 고과를 인정받아 연봉이 10% 상승한 김대리보다

맡은 바에만 충실하고 부동산 공부를 해서 집값 200%로 상승한 박 대리가 더 훌륭하다는 얘기는 이제 지겨울 정도다.


퇴직, 사직의 유행도 진행 중이고,

직장인의 워라밸은 상식 중의 상식이 됐다.




언제나 나는 준비자세




칼퇴는 국룰!

나의 꿈은 월급루팡!!

을 외치던 내가 팀장이 되었다.




오늘도 목표는 칼퇴였다.


야근은 일 못하고 무능력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

이라며 외치던 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배분받은 업무를 멋지게 처리하면서

손 탁탁 털고 일어나면 진짜 끝이었던 업무.


이제는 퇴근을 하기(시키기) 위해 타임 스케줄에 맞춰 업무를 배분하고 끝내는 능력까지 필요해졌다.


우선 해야 할 일을 적었다.



1. 보고서 작성

2. 통계표 작성

3. 보고서 요약본 작성

4. 영수증 처리



이 중 후배에게 가르쳐야 할, 넘겨도 되는 일은 통계표 작성이었다.



"잠깐만 회의실에 가서 얘기 좀 할까?"



나는 후배에게 카톡을 남겼다.

그리고 통계표 2부와 펜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은 취준생 시절 고딩 과외 이후 오랜만이었다.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렸다.

커다란 회의실에 혼자 앉아 뽑아온 통계표를 들여다보고 후배를 기다렸다.


....



1분,


2분.


하지만 후배는 오지 않았다.


혹시?

카톡을 봤다.

숫자 1이 아직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아니, 선배 카톡을 이리 늦게 보다니.



왜 안 보지? 일 안 하고 딴짓하나.

전화를 해야 하나.

언제 보려나.

일부러 안 보는 건가.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통화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진하게 박혀있던 숫자 1이 지워졌다. 그리고 우당탕탕.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죄송합니다. 카톡을 늦게 봤어요."


그는 거칠게 숨을 쉬며 등장했다.

달리기라도 하고 온 마냥 얼굴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그런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마음이 짠해졌다.


"아니야, 들어와 앉아."


나보다 20센티나 큰, 남자아이가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앞에 앉으니 나까지 덩달아 긴장이 됐다.


"다른 게 아니라 통계표 작성을 좀 가르쳐 주려고요."

"예? 예예."


후배는 당황하고 있었다.



"굉장히 간단해요. 우선 지난주 통계표를 참고해서 이번 주 통계표를 새로 만들고 내가 SPSS를 돌려서 데이터를 주면 거기에 넣으면 되고, 항목들 중에 가장 큰 값은 볼드 처리. 대신 잘 모름은 빼고요. #&'&#>'♡@(#,#;~(@,+@."


그리고 마지막에 친절하게 덧붙였다.


"하다 보면 알게 될 거예요. 우선 시간이 없으니 해보고 하면서 궁금하면 물어봐요."


활짝 웃으며 탁탁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데

뒤통수가 뜨거웠다.

그는 분명히 내 뒤통수에 대고 (속으로) 말하고 있을 것이었다.


'저 여자가 아까 무슨 말을 한거야.'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수분해를 처음 배우는 학생에게 이해를 시키듯 개념을 설명하고, 탄생 배경, 용도를 하나하나 나열할 여유 따윈 내게 없었다.


내 앞에는 그것 말고도 부서장의 지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겐 친절한 선배보다는 능력있는 후배가 되는 게 급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속도를 내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칼퇴를 위해서라면 1시간 만에 완성해야 했다.



퇴근 10분 전. 메인 보고서를 검수까지 마친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후배가 만든 통계표를 기다렸다.


"다 됐어요?"

"..."


그는 말이 없었다.


불안했다. 하지만 그에게 줄 인내심 따위 없었다.


"줘봐요."


카. 톡.


기대에 찬 심정으로 문서를 열었다.


.....


......


이게... 아닌데....



통계표는 참담했다.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하나.

총체적 난국이란 건 이럴 때 쓰는 표현이겠지.


나의 기가막힌 표정이 그에게 읽혔는지

그의 어쩔 줄 모름이 파티션 너머로 전해져왔다.


나는 나의 퇴근을 기다리고 있을 사람에게 카톡을 했다.


"오늘 야근각이다."









[오늘의 반성]


1.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일방적으로 판단했다.

2. 나에게 간단한 것이 후배에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3. 중간 확인, 과정 체크를 하지 않았다.

4. “알겠습니다”라는 말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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