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숨은 금물

by 권도연




도대체 내가 말한 건 어디에다가 팔아먹은 거야.


후배가 만든 통계표를 보다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깊은 한숨을 내뿜었다. 그러다 움찔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날의 기억이, 감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10년 전.

PD가 되겠다고 언론고시만 줄창 파다 20대 전부를 날려먹은 나는, 30이 되던 해에 지금의 회사에 취직했다.


처음엔 기대감, 행복감뿐이었다.

하지만 점차 그 '감'은 단 하루 만에 긴장감과 자괴감으로 바뀌었다.



나이만 먹었지 할 줄 아는 거라곤 백수 시절 용돈 벌이 했던 논술 쓰기뿐이었다. (그래도 나름 대치동에서 알아주는 대학 입시 논술 강사였다)

신입사원의 기본이라는 문서 작업은 일기 쓰듯 주우우욱 늘여 쓰는, 문장력만 좋으면 다 되는 줄 알았다.
대학 졸업반일 때 학점이나 딸 요량으로 MOS 자격증을 따긴 했지만 실제 엑셀이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사용되는지 전. 혀 몰랐다.

하지만 나는, 당시 나를 신입이라며 우쭈쭈쭈 궁디 팡팡해주는 상사에게 예쁨을 받겠다고 '엑셀 자격증'이 있다고 신나게 떠들어댔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수 백개의 수치가 적힌 한글 문서를 주며 엑셀로 정리하는 첫 업무를 주었더랬다.




결과는.




그때 나는 파티션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한숨 소리

- 약 10000000000 킬로미터 구덩이를 파내려 갈 듯한 깊고도 어두운-

를 들었다.





상사의 깊은 한숨은 나를 깊은 구덩이에 빠지게 만들었다.



공포 영화라면 환장하던 내가

그 긴 한숨소리에 얼마나 머리가 쭈뼛서고 등골이 오싹해지고 침이 바짝 마르고 심장이 두근거리던지...



그 한 숨을 지금. 내가. 쉬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 저 파티션 너머 건너 내 피드백을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을 후배도 내 한숨소리에 식은땀을 흘리고 다리를 달달 떨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후회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그때의 나의 사수처럼, 그 후에 만난 또 다른 선배처럼 눈 앞에 종이를 내던지며 소리를 치거나 "이게 손으로 한 거냐 발로 한 거냐." 하며 빈정거리지 않기로.


후배도 엄연히 다 큰 어른이니까. 이번이 처음일 테니까.



신입사원은 매사가 긴장이다. 출처: https://1boon.kakao.com/goodjob/5c5



그는 처음이다.

그리고 나도 처음이다.




빨간 펜을 들었다.

틀린 것, 바로 잡아야 할 것은 빨간 펜으로 표시했다. 금세 종이 한 바닥이 벌겋게 물들었다.



"다 안됐나?"


성질 급한 상사가 쪼기 시작한다.

방법을 바꿔야 했다. 후배에게 토스해서 스스로 고치고 내가 피드백하고 다시 체크하기에는 시간이 오버될 것이었다.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작업하기 시작했다.






상사에게 보고를 끝내고 일어서는 데 후배가 부스스 따라 일어섰다.


"왜?"

"...."


아!

"통계표 보고 드렸고 오케이 했으니 낼 얘기합시다. 집에 가자. 배고파."

"... 네."


그를 붙들고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

나에겐 퇴근이 더 소중했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나는 , 후배에게 다가갔다. 이번에는 카톡이 아닌 페이스 투 페이스로.


"어제 작업한 통계표 가지고 회의실에 좀 올래요? 다시 설명해 줄게요."


어떻게, 무엇을 설명할지 머릿속에 정리한 후 회의실에 들어갔다. 이미 그곳엔 무슨 큰 죄를 지은 듯한 얼굴을 한 후배가 있었다. 앞에 앉아 안색을 살피니 한 숨도 못 잔 얼굴이다.


"피곤해요? 얼굴이 안 좋네."

"아, 아닙니다."


나는 그 앞에 통계표 두 개를 나란히 놓았다.


"이건 후배님이 한 거, 이건 내가 한 거. 차이가 뭔 거 같아요?"

"....."


"완전히 다른 거 같습니다."


후배는 머뭇거리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는 사람 좋게 웃었다. 좋은 인상으로 남고 싶은 아주 작은 욕심이었다.


"뭐가 다른 지 표시해서 보고 숙지해요. 다음엔 똑같이 만들어야 하고."

"네...."
후배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죠? 엑셀에서 한글로 붙일 때, 무조건 소수점은 첫 째짜리 맞춰주고."

"네......"


더 작아지는 목소리.


" 모르는 거 있음 물어보고."

"네......."


들릴락 말락


그리고 나는 다른 업무를 처리하느라 오전을 바쁘게 보냈다. 그러다 화장실에서 사무실에 들어오는 길목에 삐죽 나와있는 후배의 자리에 자연스레 눈이 갔다.

그는.....

엑셀 데이터에서 정수에 소수점을 하나하나 클릭클릭

찍고 있었다....

뒤통수로는 식은땀을 한 바가지 흘리면서.



"혹시 엑셀 쓸 줄 몰라요?"


나는 혹여나 실례가 될까 싶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








[오늘의 반성]


1. 회사에서 한숨은 금물이다.

2. 후배가 알고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부터 파악할 것.

3. 신입사원에게 '긴장'은 디폴트다.(그러니까 좀 더 살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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