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바쁜 팀장 = 무능한 팀장

by 권도연

"잠깐잠깐, 좀 이따가 말해. 나 지금 바빠!!!!"


질문거리를 잔뜩 들고 왔던 후배는 급 움츠러들며 자리를 피했다.


"저, 지금 바빠서요. 이따가 전화드릴게요."


업무 협조 요청을 위해 전화를 했던 다른 팀원은 급 움츠러들며 전화를 끊었다.


미친 듯이 일이 몰려들고 있었다.

새 부서, 새 업무에 적응하기도 전이었다. 내부에서, 외부에서 시시각각 업무 진행 상황을 물어왔다.


해야 할 일을 수첩에 적어보니 챙겨야 할 것만 수십 가지다.

퇴근해서도 내내 일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밤 9시까지 이곳저곳에서 보내는 카톡과 전화에 대응하다 보면 뜨겁게 달궈진 뇌는 자정이 넘도록 식지 않았다.


지쳤다고 말할 힘도 없이 지쳤다.


팀원이었던 때처럼 난 내 일만큼은 완벽하고 싶었다.

하지만 팀장에게 내 일란, 팀원의 일이자 팀의 일이기도 했다. 그러니 양이 많았다. 질은 또 '팀장급'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하니 부담은 더했다.


마음은 급한데 나 혼자 뛰는 느낌이 들었다. 팀원들은 내 마음처럼 따라와 주지 않았고, 갖고 오는 결과물은 족족 오류 투성이었다. 마음이 예민해지니 후배들의 태도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터졌다. 오타를 지적한 보고서가 또다시 내 눈 앞에 온 순간 폭발하고 만 것이다.



"오타는 좀 확인하고 주면 안 되나?!!! "


기어이 빵!!






"이거 잘못된 거 같은데요. 수치가 맞질 않아요."


감정이 수습되기도 전에 외부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이 분야에서 경력만 20년이라던 거래처 담당자는 문서 실수를 지적하면서 슬쩍 웃음을 흘렸다.


"아, 예전엔 이런 실수가 없었는데 말이죠. 요즘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상대의 스케일을 훑고, 약자이다 싶으면 발톱부터 드러낸다는 정글의 잡식 동물답게 그는, 이 분야 1년짜리의 경력 팀장에게 대놓고 적대적이었다. 언젠간 실력으로 눌러 주리리 하며 버텨오던 나였다. 그런데 하필 수치 실수라니. 애써 지켜왔던 자존심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느낌이었다.


"앗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밑에 애가 한 걸 그대로 보냈는데, 실수가 있었네요."


뭐라고???? 내 입을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야?! X 팔리게 후배 탓한 거야?! 10년 전 부서장 앞에서 당시 신입이었던 나에게 소리를 지르던 팀장이 떠올랐다. 이건 자존심 정도가 아니라 나에 대한 부정이나 다름없었다.


"죄송합니다."


자괴감에 고개를 파묻고 있는 나에게 후배가 죄인처럼 다가와서는 비#500을 건넨다. 짜슥...


'니가 뭔 죄니. 꼼꼼히 체크 못한 내 탓이지..'


부끄러웠다. 잘하려다가 더 잘못하게 됐다고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이대로 가다간 대형 실수가 터질 참이었다. (아님 내가 번아웃이 오던가.)


내 안에 해답이 없으면 밖에서 찾으라 했다.


"선배, 잠깐 저랑 통화 가능하세요?"






난 내 생애 첫 사수였던 선배에게 카톡을 보냈다. 몇 해 전 악질 상사에게 갖은 괴롭힘을 당하다 퇴사한 그녀는 나의 유일한 정신적 멘토였다. 그녀는 사내에서 일 잘한다고 이름났던 선배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에게서 어떤 말이라도 듣고 싶었다.



"애를 키우다 보면 깨닫게 되는 게 있어. 내 욕심에 내가 죽어난다는 거. 그래서 난 제일 중요한 거 하나만 지키기로 했어. 건강하게만 키우자. 그랬더니 이제 좀 살만 해. 애한테 짜증도 덜 내고. 너도 하나만 해. 팀장질 하나만 하라고. "



처음에는 그게 무슨 순진한 말인가 했다. 하지만 나는 선배가 말하는 '욕심'이란 단어를 곱씹었다.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은 일도 아닌 욕심이었던 걸까.



'팀장'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싶은 욕심.

일 잘하는 '능력자'로 칭찬받고 싶은 욕심.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멘토'가 되고 싶은 욕심.





너무 많은 욕심은 일을 그르치게 되어있었다.


팀장은 달리는 존재가 아니라 후배들을 달리게 하는 존재여야 한다고 했다. 달리다 지치지 않게, 지름길로 달릴 수 있도록, 그래서 모두 같이 결승선에 다다를 수 있도록 팀원들을 응원하고 안내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했다.


그 많은 타이틀 중에 하나만 선택한다면, 내가 택해야 하는 것은 '팀장'이어야 했다.






[오늘의 해야 할 일]


1. 나의 할 일 체크리스트를 후배 별로 나누기로 했다.

팀원 별 이름을 적고 각자에게 할당할 업무를 적었다.


2. 할당된 업무가 진행되고 있는지 중간 체크하고, 점검하는데 충실하자. 새로운 업무가 늘어나면 현 업무 진행상황을 파악한 후 배당해 특정 팀원에게 업무가 몰리지 않도록 조정해야 할 것이다.


3. 짧은 회의(5분 내외, 단톡으로라도)를 통해 팀원들끼리 업무 내용을 공유토록 해야 한다. 그래야 누구라도 나 혼자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는 억울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4. 추후 최종 결과물이 나오면 나의 것이 아닌 팀원의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서로의 노력을 격려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팀원들 앞에서 팀원에 대한 질책은 하지 말자. 틀린 건 조용히, 지적 사항은 단호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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