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부서, 새 업무에 적응하기도 전이었다. 내부에서, 외부에서 시시각각 업무 진행 상황을 물어왔다.
해야 할 일을 수첩에 적어보니 챙겨야 할 것만 수십 가지다.
퇴근해서도 내내 일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밤 9시까지 이곳저곳에서 보내는 카톡과 전화에 대응하다 보면 뜨겁게 달궈진 뇌는 자정이 넘도록 식지 않았다.
지쳤다고 말할 힘도 없이 지쳤다.
팀원이었던 때처럼 난 내 일만큼은 완벽하고 싶었다.
하지만 팀장에게 내 일란, 팀원의 일이자 팀의 일이기도 했다. 그러니 양이 많았다. 질은 또 '팀장급'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하니 부담은 더했다.
마음은 급한데 나 혼자 뛰는 느낌이 들었다. 팀원들은 내 마음처럼 따라와 주지 않았고, 갖고 오는 결과물은 족족 오류 투성이었다. 마음이 예민해지니 후배들의 태도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터졌다. 오타를 지적한 보고서가 또다시 내 눈 앞에 온 순간 폭발하고 만 것이다.
"오타는 좀 확인하고 주면 안 되나?!!! "
기어이 빵!!
"이거 잘못된 거 같은데요. 수치가 맞질 않아요."
감정이 수습되기도 전에 외부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이 분야에서 경력만 20년이라던 거래처 담당자는 문서 실수를 지적하면서 슬쩍 웃음을 흘렸다.
"아, 예전엔 이런 실수가 없었는데 말이죠. 요즘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상대의 스케일을 훑고, 약자이다 싶으면 발톱부터 드러낸다는 정글의 잡식 동물답게 그는,이 분야 1년짜리의 경력 팀장에게 대놓고 적대적이었다. 언젠간 실력으로 눌러 주리리 하며 버텨오던 나였다. 그런데 하필 수치 실수라니. 애써 지켜왔던 자존심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느낌이었다.
"앗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밑에 애가 한 걸 그대로 보냈는데, 실수가 있었네요."
뭐라고???? 내 입을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야?! X 팔리게 후배 탓한 거야?! 10년 전 부서장 앞에서 당시 신입이었던 나에게 소리를 지르던 팀장이 떠올랐다. 이건 자존심 정도가 아니라 나에 대한 부정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