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시대에 독서하는 방법
벽면 가득히 꽂혀 있는 책들을 보니 지금이, 내가, 타인들이 보인다.
'위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무언가 허전하고 답답하면 나는 서점을 찾곤 한다. 책을 보면서 머리를 식힌다는 표현을 예전에는 잘 몰랐다. 머릿속을 맴도는 소음과 복잡한 상황들, 결이 거친 사람들에 치이고 지칠 때, 책은 대가 없이 말을 걸어주는 귀중한 존재였다. 어렸을 때 손에 쥐고 놀았던 애착 인형처럼 책은, 그렇게 따뜻했고, 고마운 존재였다. 어렵게 시간을 내 찾아 간 서점에서 뚜벅뚜벅 책장 사이를 지나쳐 걸어가다가 표지가, 제목이, 혹은 작가가 마음에 들어서 집어 든 책에서 받은 짧은 위로로 하루, 이틀, 한 달을 버티곤 했다.
이른 출근, 늦은 퇴근길에서 위로의 시간을 가져와 손에 쥐기가 힘든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이다. 양장본으로까지 돈을 들여 만든 책은 무겁기만 하고 앞 뒤체온이 느껴지는 지옥철에서 꺼내 읽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가볍고 쉬운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린다. 이 작은 요물이 없던 시절에는 기나긴 출퇴근길을 무엇을 하며 버텼나 싶다.
한 때는 e-book을 살까도 고민했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긴 호흡의 소설은 짧은 호흡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나에게 숨이 찼고, 역사의 씨줄과 사건의 날줄들이 얽히고설킨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은 쏟아지는
방대한 지식들에 숨이 막혔다. 그러니 결국 또 스마트폰 세계로 퐁당. 빠지자마자 허우적댈 수밖에 없는 달콤한 지옥. 가시가 돋힌 기사들, 과격한 댓글들, 자극적인 광고들이 원치 않게 눈 속으로 마구 들어온다. 머리는 잠깐 식었던 거 같은데 마음은 더 공허해졌다.
그러다가 좋은 방법을 하나 생각해냈다. 발견해 이용하니 천국이다. 전철 안에서, 버스 안에서 영혼만 잠깐 서점에 다녀온 기분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그리고 이 상황, 밀려오는 이 감정의 파고를 어떻게 견디는지 공감하고 공유하고 싶을 때,
반드시 포함될 단어/문장에는 " "를 붙여서
어떤 느낌, 특정한 톤의 글을 읽고 싶을 때는 ~를 붙여서
어제는 신랑과 잠시 동안 말다툼을 했다. 괘씸한 마음에 씩씩대다가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옆에서 쌔근대며 자는 신랑 얼굴을 보고 나니 마음이 누그러졌다. 이렇게 쉽게 풀릴 것을, 어제 한 번 등을 토닥여주고 잘 걸, 감정을 다 토해내기 전에 한 번만 꾹 참았으면 될 걸. 후회가 밀려왔다.
출근길에 검색창을 열었다.
키워드는,
“신혼” ,~사랑, ~인연, “현명”
그랬더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놓쳤을 기사들과 누군가가 옮겨 놓은 책의 문구들, 글들이 검색된다. 배우 김하늘의 드라마 속 대사와,
“‘어느 낯선 도시에서 30~40분 사부작 걷는데, 어디선가 불어오는 미풍에 복잡한 생각이 스르르 사라지고 ‘인생 뭐 별거 있나, 잠시 이렇게 좋으면 되는 거지’ 그러면서 다시 힘내게 되는, 그 30~40분 같아요. 도우 씨 보고 있으면’이라는 대사는 정말 대박이예요. 아직도 외우고 있을 정도로 울컥했던 장면이었죠. ‘수아’의 아픈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지 않나요? 어떻게 이런 대사를 쓸 수 있는지, 작가님이 존경스러워요.”
어느 책 한 권의 추천평,
살면서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칼 필레머는 과거에 저지른 실수는 바로잡을 수 없으나 현명한 생각을 통해 미래의 후회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번에는 수백 명의 노인들에게 그들이 깨달은 오랜 관계의 비밀에 대해 물었다. 행복은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매 순간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임을 관계의 현자들은 힘주어 강조한다. _시카고 트리뷴
그리고 법정 스님의 조언까지.
누가 나를 치켜세운다고 해서 우쭐댈 것도 없고, 헐뜯는다고 해서 화를 낼 일도 못된다. 그건 모두가 한쪽만을 성급하게 판단한 오해이기 때문이다. 오해란 이해 이전의 상태가 아닌가. 문제는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다. 실상은 말 밖에 있는 것이고, 진리는 누가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는다. 온전한 이해는 그 어떤 관념에서가 아니라 지혜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 이전에는 모두가 오해일 뿐이다.
쏟아져 나오는 글들을 읽다가
가슴 가득히 차오르는 온기 때문에
하마터면 목적지를 지나칠 뻔했다.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 사이로 신랑의 모습이 보였다가 내가 보였다가 사랑하는 엄마, 아빠, 오빠 가족이 다 보인다. 그래, 인생 뭐 별거 없잖아.
오늘도 스마트폰 하나로, 검색 창 하나로
공짜 위로를 받았다.
기운 내 일하자.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