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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연 Mar 03. 2024

제 2화

"그러니까 부장님 말씀은.."

"프로모션 행사 내일부터니까 물량 체크하고 일일 판매량 보고하라고. 송 차장 업무 계속 같이 해왔으니까 잘 알잖아?!"

"그렇긴 한데.. 제가 어떻게."

"그럼 난 어떡하나. 인사팀은 사람 줄 생각 전혀 없어 보이고, 당장 일은 해야 하고. 다른 것도 아니고 애가 갑자기 예정일보다 일찍 나왔다는데. 같은 여자로서 김 대리는 이해를 못 해주는 건가? 혹시 김 대리 뭐 페미니스트 그런 거야?"


소영은 이때다 싶어 소리를 질러대는 박 부장의 얼굴에 그의 목소리 데시벨만큼 큰 소리로 고함을 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같은 여자니까 이해하라고? 난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을 건데?! 비혼주의자면 페미니스트야? 페미니스트가 뭔지나 알고 지껄이는 거냐고!








소영은 자리에 앉아 송 차장이 하다 만 엑셀을 열어 메일로 들어온 업데이트 숫자들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늘 하던 일이었지만 예전보다 속도가 나지 않았다.


이제 옆에서 자신의 업무를 검토해 줄 상사가,

다른 부서와의 업무를 조율해 줄 선배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소영은 어미개를 잃은 강아지가 된 기분이었다.






 

'오늘 맵떡 ㄱㄱ?'


친구 예진의 톡이었다.

시계를 보니 4시 50분이 막 지나고 있었다.

70분 안에 작업을 끝내지 못하면 또 야근이었다.


'ㄱㄱ. 이따 만나.'


소영은 예진에게 톡을 보낸 후 클릭질에 속도를 높였다. 영업팀에서 넘어온 지점별 현황을 체크해 각 유관 부서에 메일로 송부하면 되는 일이었다. 소영의 마우스가 바쁘게 움직였다.    


"김 대리, 이것 좀 마무리할래. 우리 애가 열이 나서 어린이집에서 빨리 오라고 난리야. "


전략팀 오 차장이었다.


"네? 이걸 왜 제가..."


소영의 말에 11층 전체 사무실이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소영은 그제사 지금까지 몇 번이고 고심해 말을 고르던 자신의 태도가 자동반사적 대응으로 바뀐 것을 알았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자신에게 의무가 되어버린 억울함? 아니면 단순히 또 애 때문에! 그 놈의 애 때문에! 주말부터 자신을 짜증나게 만든 애 때문에?!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걸요? 제가요? 왜요? 상징되는, 일명 '요' 시리즈를 버젓이 선보이고 있는 86년대생 소영을  'MZ했다'여겼다.


건방지고 눈치 안 보고 이기적이고 비협조적인 어린 사원들을 보고 사람들은 MZ라서 그렇다고 했다. 배꼽 티에 피어싱을 해 '괴상하고 망측하다'는 잔소리를 들은  X세대는  자의타의 '꼰대'가 되자마자 아래 세대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그럴 때마다 소영은 일부러 눈을 크게 뜨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순진한 척 몸을 베베 꼬는 여자 배우가 나오는  tv 프로그램 게시판에 악플을 달고만 싶어졌다. MZ라고 다를 거 같냐고. 나는 상사가 시키면 군말 없이 하고 위계질서에 순응하며 내 일 네 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고.


"응? 이거 원래 우리 팀이랑 송 차장이 같이 하던 거야. 인수인계받은 거 아녔어?"

"그렇긴 한데.."

"메신저로 파일 줄게. 와이프가 이번 달 출장이라 애 볼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 그래. 애가 오후 간식 먹고 토하고 난리라는데 좀 봐주라 김 대리."


평소 사람 좋기로 소문난 차장의 말에 소영은 그만 잔뜩 힘주었던 미간을 풀 수밖에 없었다. 그는 딸바보에 애처가라고 했다. 그의 간절하고도 동글한 눈빛의 너머에는 여자인 소영은 당연히 이해해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네.. 제가 해서 메일로 보내 놓을게요."



소영은 바로 예진에게 톡을 보냈다.


'늦을 듯.'








헐레벌떡 들어선 분식집에는 캡사이신으로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자 마음먹은 직장인들이 가득했다. 모두의 얼굴에 피곤과 화가 가득했다.

영은 그 사이에서 짧은 커트 머리에 노랗게 염색한 예진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다?!"

"미친 듯이 하고 나왔지. 아씨 막판에 일이 몰려서 또 야근할 뻔했잖아."

"7시 퇴근이면 야근인데?!"

"그거 야근비도 안쳐줘. 8시까지 해야 1시간 쳐준다."

"워라밸 좋아서 여성 친화적 기업이라더니  너네 회사도 다를 거 없네."

"내 말이. 빌어먹을 여성 친화 때문에 내가 오늘도 야근한 거 아냐. 출산 휴가에 어린이집에 아주 난리야 난리."

"왜 다들 사서 고생하는지 몰라. 결혼! 임신! 그 순간 여자 인생 다 끝나는 거야. 그렇게 쉽게 자기 커리어 내팽개칠 거면  왜 아등바등 공부하고 수능 보고 그랬는지. 너 그 얘기 들었어? 우리 학교 전교 1등 하고 서울대 간 정아린. 걔 지금 뭐 하는 줄 알아?"

"대학 졸업하자마자 첫 사랑하고 결혼한 거 까진 알아. 잘 살겠지. 워낙 똑똑하고..."

"걔 애 낳고 육아한다고 잘 다니던 대기업 때려치웠거든. 근데 애가 이제 중학생 되니까 엄마 손이 필요 없겠지? 돈은 학원비에 과외비에 더 많이 들 거고.  근데 아무리 서울대 나왔어도 경단녀를 누가 받아주겠어?!"

"그래서?"

"지금 학습지 선생한단다."


컥.


소영은 매운 떡볶이 양념이 코로 솟구치는 느낌을 받으며 아주 오랜 시간 컥컥거렸다.


"뭘 그리 놀래. 애 엄마되면 하버드 나와도 별 수 없더라."


예진은 소영에게 복숭아맛 음료를 건네며 씁쓸해했다. 그때였다.



꺄악!!!!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난 여자는 자신의 하얀 정장에 쏟아진 붉은 떡볶이 양념을 손으로 쳐내며 화를 냈다.


"야!! 미친. 너 여기가 놀이터야?!!!!!"


그녀 앞에는 일곱 살 정도 되어버린 남자아이가 순진한 표정으로 공을 튕기며 서있었다.


"아, 이제 여기도 못 오겠네. 왜 매운 거 파는 분식집에 애를 데리고 오고 난리야."


예진은 마지막 남은 떡볶이를 입에 구겨 넣으며 중얼댔다.

소영은 예진과 디저트를 먹을 카페를 검색했다.

아주 가까운 곳에 소영과 예진 둘 다 만족할 만한 곳을 검색어에 넣어 찾았다.


 노키즈존.

주변에만 10여 곳이 넘게 검색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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