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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연 Mar 03. 2024

제 1화


"아악!!!!"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소영은 이불을 박차며 소리를 질렀다. 새벽부터 울려대는 조카 은서의 울음소리는 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 들수록 더 깊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엄마! 언니 오늘 안 온대?!!! 쟤 좀 어떻게 해봐!"


소영이 산발한 머리를 하고 거실을 향해 냅다 소리를 질렀다. 은서가 토한 분유물을 닦던 엄마는 안 그래도 화가 나 미치겠는데 다 큰 딸이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자 피곤 섞인 짜증을 냈다.


"애가 그럼 울지. 넌 이모가 돼서 그것도 못 참아?!!"

"엄마 나 일주일 내내 야근한 거 몰라? 어제도 10시에 퇴근해서 토요일 아침에 늦잠 좀 자겠다는데 너무 한 거 아니냐고?!!! 언닌 왜 어제 안 온 거야?! 원래 금요일에 애 데리고 가기로 했잖아?!!"

"중요한 재판 일정이 변경됐대. 주말 내내 일해야 한다는 데 어떻게 그름? 넌 동생이 돼서 언닐 도와주진 못 할 망정."

"내가 왜!!!!! 엄만 맨날 언니언니. 공부 하나 잘 한 걸 가지고, 평생을 언니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어!!"

"쟤가 말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뒤치다꺼리라니. 나중에 너, 니 애 봐달라고 하기만 해 봐."

"그럴 일 절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미쳤다고 애를 낳아?!!! 누구 좋으라고?!!!!"


쾅.


문이 닫히는 소리에 은서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소영은 짜증 난다는 듯 서랍을 뒤져 이어 플러그를 찾아 꽂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썼다.








"주말이라고 집콕하겠다더니 왠 벙개."


최강이 치킨을 씹으며 말했다. 최강은 유치원 때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였다. 소연은 최근 유난히 자주 최강에게 직장일로, 상사 문제로, 이직 문제를 털어놨다. 그럴 때마다 강은 소영의 그런 신세한탄을 묵묵히 들어주곤 했다. 조카 은서가 태어난 후, 소영의 짜증이 한 층 늘어난 이유를 강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소영은 언니 태영과 정반대였다. 성적도, 외모도 평범했던 소영과 달리 2살 위인  태영은 어디서나 무엇에서나 눈에 띄었고, 칭찬을 받았다. 부모님은 그런 태영이 자랑스러웠다. 1등을 했다고, 상을 받았다고, 합격했다고 케이크 초를 불고 전화를 걸었다. 그러느라 둘째 딸의 마음은 돌보지 못했다.


소영은 언니의 성공을 가슴 깊이 축하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에게서 자연스레 꿈틀대는 질투라는 감정을 유치하고 못난 감정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태연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의사와 결혼에 성공해 신혼집으로 분가했을 때 그때서야 소영은 깨달았다. 언니의 짐이 눈앞에서 사라진 순간, 마지막 짐을 옮기며 잘 있으라는 언니의 말에 소영은 난생처음 언니를 꼭 안고서 말했다. '잘 가. 축하해 그리고 고마워.'

안도감이었다. 이제야 부모의 사랑이 오롯이 자기 것이 되었다는 안도감.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태영은 허니문 베이비를 출산하자마자 조리원이 아닌 친정집을 고집했다. 1년이란 육아휴직을 3개월만 쓰고서는 로펌으로 출근했다. 아이는 엄마 몫이었다. 태영은 일요일 밤 아이를 맡기고서 금요일 밤에 찾아가는 일을 반복했다. 엄마는 월화수목금요일 전부를 외손녀를 보는 데에 몽땅 할애했다. 소영에게 남았던 안도감은 짜증과 분노로 변해버린 걸, 최강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너도 독립을 ."

"할 거라니까. 할 건데 아직은."

"아직은 뭐?! 또 그 얘기야?"

"넌 걱정 안 되냐? 혼자 사는 여자 집에 따라 들어갔다는 사람, 여자 집 앞에 일방적으로 선물을 놓고 사라진다는 사람, 여자 집만 골라 문에 표시해 놓는 사람, 또."

"그러니까 나랑 살자니까? 아니 내 방 두 개나 빈다니까?! 설마 너 내가 너한테 딴 맘 품을 까봐?!"

"뭐래. 미쳤냐."

"그러니까 들어와. 친구지만 공짜는 좀 그러니까 월세 30만 받을게. 어때 괜찮지? 방은 우리 집에서 제일 크고 화장실 딸린 걸로. 오케?"


소영은 고민했다. 안 그래도 요즘따라 회사 일이 급속도로 많아지고 있었다. 6시 칼퇴를 못한 지 한 달째였다. 주말만은 조용히, 늘어지게 자고 싶은 소영이었다.


"그럼..."


대답하려는 찰나 소영의 폰이 드르륵 울렸다.


평소 회사 상사의 전화나 카톡은 읽지 않았던 소영이었지만 그날 따라 소영의 눈에 두 글자가 눈에 박혔다.


"김대리, 나 담주에 급하게 출산휴가 들어가야 할 듯. 어쩌지. 내가 박 부장님껜 연락드렸어."


직속 사수의 연락이었다. 휴가라니. 이 말은 당장 다음 주에 있을 제품 프로모션 행사를 직접 챙겨야 한다는 의미이자, 다음 달에 출시될 신제품 개발 업무도 자신에게 떠맡겨진다는 뜻이었다.


"엉? 주말에 우리 집에서 조용하게 편히 쉬게 해주겠다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채근하는 강의 말에 소영은 결국 소리를 백 하고 지르고 말았다.


"쉬기는 개뿔!!! 당장 주말에 특근하게 생겼다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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