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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연 Mar 07. 2024

제 4화



육아를, 출산을 이유로 생긴 빈자리는

1년, 2년이 넘어가도록 채워지지 않았다.


빈자리의 업무 공백을 채워야 하는 것은 남은 사람의 몫이었다. 홍보팀, 영업팀, 전략팀, 심지어 인사팀도 육아 휴직자가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비슷한 연령대의 여자들이 비슷한 시기에 임신하는 것은 여초 회사가 매년 겪어야 하는 연례행사와 같았다.

  

'누가 우리나라 저출산이래?!!!!'


홍보팀 백 대리가 소영에게 말을 걸었다. 이후에도 백 대리는 신세한탄을 쏟아냈다. 메시지 창이 몇 번이고 깜박였지만 소영은 열어 볼 여유조차 없었다.


사수인 송 차장이 하다만 프로젝트, 문서 작성, 행정 처리, 거래처 연락만으로도 머리가 새하얘질 지경이었다. 거기에 송 차장의 주도로 계약한 제조업체가 샘플 발주를 이틀 남기고 어제부터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어머. 모르셨어요? 대표님 태국에 골프 치러 가셨는데. 차장님은 아셨을 텐데 왜 말씀이 없으셨을까. 이상하다."


어렵게 연락된 거래처 직원은 소영의 애타는 마음은 아랑곳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그 말에 소영은 참았던 화를 폭발하려던 차였다. 대표는 대표고 너는 너지. 회사에 남아있으면 전화라도 잘 받아야 할 거 아냐. 하여튼 무책임한 것들이 문제야 휴직자든 휴가자든!!!!  그때였다.


'김 대리, 우리 라라 태어났어. 생각보다 한 달이나 먼저 나왔는데 아이는 건강하대. 천만다행이지.  ㅠㅠ  근데 우리 김 대리 나 때문에 힘들 텐데 어쩌지? 무책임하게 나온 거 같네. 미안해. ㅠㅠ.'


차장이었다.  그녀는 눈물 자국을 수 십 개 찍어 보내며 미안하다고  했지만 소영의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문자와 함께 온 아이 사진에 딱딱했던 마음이 더 차갑게 얼어붙었다. 


아직 눈도 채 뜨지 못한 갓난아기는 솜털 보송보송한 얼굴이 아닌, 붉고 쪼글쪼글한 낯선 얼굴로 하얀 천 안에 쌓여있었다. 뭐라고 반응해야 하는 건데, 예의상으로라도 귀엽다 해야 하는 거야? 딱 봐도 징그럽기만 한데. 설마 예쁘단 말을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건강하시다니 다행입니다.'


아부는 생략하기로 했다. 대신


'흑흑 전 개고생 중입니다. 하는 데까지만 하려고요.  안되면 뭐.. 때려치우져 뭐. 하하하하.'


자폭을 선택했다.  은근한 원망과 함께.


'복귀하면 내가 김 대리 많이 챙겨줄게. 조금만 참아!'


소영은 송 차장의 메시지 중에 '복귀'라는 단어에 눈을 번쩍 떴다.


'언제 복귀하시는데요? 첫째 때처럼 3개월만 하고 나오시는 거예요?'

'글쎄, 둘째라 쉬울 줄 알았는데, 몸은 더 힘드네. 몸 회복되는 걸 봐서 결정하려고.'


소영은 그녀의 말에 그간 위태롭게 붙잡고 있었던 참을성의 끈이 탁! 하고 끊어지는 걸 느꼈다.

송 차장 밑에서만 6년이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고 직장생활 6년이면 사수의 말에서 행간을 읽는다. 소영은 확신했다.



차장님은  

일찍 복귀할 생각이 없.다.

  




"오늘 오후에 부서장이 마케팅팀하고 신제품 개발 관련해서 회의하자네?  송 차장이 기획했던 '프리미엄 수분크림' 그거 부서장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아. 알지? 그 까칠하고 찬바람 쌩쌩부는 부서장. 그 여자 별명이 미친 노처 X이라며? 그런 여자를 어느 남자가 좋아하겠어. 그러니 결혼을 못했지. 캬캬. 근데 그 부서장 담당자가 자릴 비웠으니 그냥 엎어버리자고도 할 수 있어. 송 차장 성격도 보통 아닌데, 돌아오면 한 바탕하지 않겠어? 그 뒷감당 김 대리가 하기 싫으면 잘 대응해 보라고~"


박 부장의 말대로 차장이라면 부서장과 큰 소리가 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회사 내 그 누구도 송 차장을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송 차장은 사내에서 손꼽히는 에이스였다. 송 차장과 부서장의 싸움이라니. 강대강 대치였다. 소영은 몸서리가 쳐졌다. 그런데 이 와중에 박 부장은 슬그머니 발을 빼려 하고 있었다.


"송 차장님 더 쉬실 거 같던데요? 첫째 때 안 쓴 육아휴직도 있고 몸도 예전 같지 않으시대요."


소영은 원망의 화살을 박 부장에게 돌렸다. 송 차장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것은 박 부장의 몫이기도 했으니까.


"쉬긴? 그 일중독 인간이? 그리고 그러기 힘들걸. 애 분유 값, 기저귀 값, 거기에 첫째 애는 영어 유치원 다닌다며? 휴직하면 통장에 얼마 꽂히는 줄 알아? 백이십만 원이야. 그걸로 생활이 되겠어? 송 차장 남편은 회사 때려치우고 사업 준비 중이라며. 잘도 쉬겠다."








"박 부장님이 뭘 모르시네. 송 차장님 완전 금수전데. 아니다 다이아몬드수저야 거기."


백 대리가 말했다.  대리는 송 차장님과 같은 학교를 나와 입사 전부터 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다. 소영과 백 대리는 입사 동기였다. 둘은 자주 만났다. 점심시간에, 탕비실에서 만나 신입 시절 설움을 나눴고, 상사 험담, 연애 상담을 했었다.


"그렇지?"

"송 차장님이 오전에 애기 사진을 보내셨거든? 근데 보니까 애가 청담 유명 조리원 로고가 박힌 속싸개를 하고 있는 거야. 그 로고가 구찌랑 비슷해서 구찌 조리원으로 불리는 데거든. 거기가 얼만 줄 알아?"

"얼마"

"이천육백만 원."

"뭐 이천육백???? 한 달에??"

"아니, 2주에. 대박이지."

"헐. 근데 넌 그걸 어떻게 잘 알아?"

"야, 나 내년에 결혼하잖아."


그래, 백 대린, 첫사랑이랑 결혼한다고 했었다. 백 대리보다 학벌이 떨어지는, 사는 수준도 낮아 백 대리의 부모님이 반대한다는 세기의 눈물겨운 결혼.


"하는 거야 결국?"

"해야지. 내가 아니면 누가 걔랑 결혼해 주겠니."

"집은? 부모님이 한 푼도 못 보태준다고 했다며."

"지금 열심히 신혼부부 특공 넣고 있어. 요즘 결혼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니 경쟁률 낮겠지 뭐."

"애는. 바로 낳을 거지?"

"애?"

 

소영은 그녀의 입에서 당연한 걸 왜 물어하는 대답이 나올 거라 예상했다. 로고만을 보고 어느 조리원인지 알 정도면 당연히 임신, 출산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한 것이다. 무엇보다 친언니에게서 태어난 조카를 무척이나 예뻐하는 백 대리였다. 소영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아이 얼굴인데도 백 리는 점심때마다 조카 동영상을 돌려보며 혼자 까르르 거렸었다.


"아니? 우리 딩크 할 건데?!"


휘둥그레진 눈을 한 소영에게 백 대리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남자 친구랑 내 월급 뻔한데 그걸로 애를 어떻게 키워. 우린 주말엔 캠핑하고 주중엔 맛집 데이트 하면서 자유롭게 살 거야. 너도 선배들 봐서 알잖아. 난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아. 시간에 쫓기고 일에 육아에 치여서 과로사하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회사에는 얼마나 눈치 보여? 난 남자 친구랑 우아하고 약간은 심심하게 그렇게 살 거야."


"딩크족은 이혼도 쉽대. 노년엔 결국에 외로워질 거라고 그랬어."


 엄마가 소영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엄만,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소영에게  이혼과 외로움이란 두 단어를 자동 반사기처럼 사용했다. 소영은 백 대리의 반응이 궁금했다.  

하고 싶은 말 잘하지 못하고 늘 속으로만 끙끙대는 자신과 달리 똑 부러지고 할 말 다하는 대리라면, 좀 더 그럴듯한 이유로 엄마의 말을 되받아칠 수 있지 않을까.


"야, 통계청에 가서 물어봐라. 가진 사람 이혼율이 높은가 딩크족 이혼율이 높은가. 육아하는 선배들 중에 행복하단 사람 봤어? 하원을 누가 시키니, 교육비를 왜 이렇게 많이 쓰니, 만날 싸우질 않나, 입만 열면 남편욕 와이프욕하는 사람들 우리 회사만 한 트럭이잖아. 보면 모르겠어? 이혼? 애가 없어서 쉽다고? 아니 상대가 바람이라도 나봐. 이혼해야지 애 때문에 참아? 그것만큼 지옥이 어딨어. 그리고 노년? 외로움? 자식 있다고 안 외롭나? 너 얼마 전에 유명한 할머니 배우, 혼자 집에서 고독사했다는 기사 못 봤어? 자식들 다 미국에 있었다잖아. 차라리 딩크였음 좀 달랐을 거라고 생각해 난. 자식에게 기댈 시간에 자주 연락하는 친구 만들고, 자식에게 퍼부을 돈으로 실버 커뮤니티라도 가입했으면 할머니살았을 거야. 퍽하면 사람들 딩크족 늙으면 외롭다 하는데, 안 해본 사람들이 만들 어 낸 억지라고 봐. 아니다, 혹시 자신은 포기한 자유를 누리는 딩크족에 대한 질투심인가?!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 그거 딩크족이 만든 말이냐? 부모들이 애 낳은 거 후회하면서 하는 말이지."


 그래, 역시 백 대리 말이 맞아.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말도 있네. 역시 혼자가 편한 거지.







박 부장이 말한 대로 회의실 분위기는 살벌했다. 이미 부서장의 의중을 파악한 듯한 마케팅팀장은 평소보다 더욱더 거드름을 피웠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알겠지만 요즘에 소비자들 지갑 여는 게 얼마나 힘든 지 알아요? 이 기획서, 포인트가 없어요. 프리미엄, 이 단어로 모든 게 통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뉴스 안 봐요? 양극화 시대잖아.  명품 아니면 가성비야. 우리가 아무리 명품이니 프리미엄이니 이름 붙여도 샤넬, 구찌가 아닌 이상 짝퉁이라고. 그 돈이면 사람들 그냥 피부과 가서 시술한다니까."


마케팅팀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 부장은 소영을 쳐다봤다.  

니 사수가 한 거니 니가 수습해

라는 뜻이었다.


소영은 나지막하게 숨을 내쉬었다.

점심시간 내내, 백 대리와의 대화 중에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과연 부서장이 오케이 할까?

남들 다 하는 '기혼 여성'의 길을 포기하고 자기 커리어를 탄탄하게 지켜 낸, 일명 ‘명예 남성’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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