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도연 Mar 15. 2024

제 6화


언니는 밤이 늦어서야 연락이 됐다. 

모두가 잠든 자정, 태영은 초췌한 얼굴을 하고서 친정을 찾아왔다.


"금요일도 아닌데 무슨 일 있어?"


금요일 밤 퇴근길에 은서를 데리고 집에 깄다가 일요일 밤에 다시 딸을 맡기고 돌아가는 패턴에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엄마는 수요일, 그것도 아주 늦은 밤에 집에 온  딸의 돌발 행동에 궁금함보다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걱정이 되는 소영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나 좀 쉴까? 은서 좀 클 때까지?"


무겁게 입을 뗀 언니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우울했고 참혹했다.








이름 박제아.

 2012년 아주 무더웠던 8월 10일, 3시 35분에 태어난 아이. 3.4킬로의 정상 체중에, 잠투정은 심했지만 한 번 눕혀놓으면 멍하니 멜로디 모빌을 보면서 손도 타지 않았던 아이. 자라면서도 아프거나 예민하게 굴어 엄마아빠를 힘들게 하지 않았던  건강한 아이.

바쁜 부모 대신 사랑을 듬뿍 주는 시터 이모의 말도 잘 듣고, 주는 대로 먹고 입혀주는 대로 입는, 자기 취향이나 고집도 없는 소위 '키우기 수월한' 아이가 제아였다.


서울 변두리에 본사가 있는, 100여 명 규모의 회사를 다니는 아빠와 100여 명보다는 조금 많은 사람들로 구성된 제조업체를 다니는 엄마의 월급을 합치면, 한 달 평균 천만 원 정도가 모였다. 부동산 폭등기일 때 남들 따라 재테크용으로 투자해 놓은 지방 아파트의 대출금을 갚고, 현재 사는 아파트의 월세를 내고, 생활비, 공과금 등을 제외하고 남은 돈을 엄마아빠는 몽땅 제아를 위해 썼다.


엄마아빠는 제아를 자신들과는 다르게, 하지만

 남들처럼만큼은 키우고 싶었다.


토익 900을 넘기려고 학원과 동영상 강의를 전전하던 자신들과는 다르게

대학생 유럽 배낭 유행이 한창 유행이던 22살 처음으로 아르바이트한 돈을 모아 해외를 밟았던  자신들처럼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 지 않게

각종 아르바이트와 인턴을 전전하다가 수없는 서류 탈락을 맛보고, 결국 전공과는 상관없는 회사에 들어가 무에 시달리며 야근과 특근을 밥먹듯이 하는 자신들처럼은 안되게


그래서 엄마아빠는 제아가 만 3세에는 한글 개인교습을 시켰고,  만 4세에는 사고력, 수학 학원을, 만 5세 때는 독서와 논술 학원을 보냈다.

영어 유치원에서 사립 초등학교로 이어지는 일명 고급 사교육 과정에서 제아는 단 한 번도 가기 싫다고 울거나 떼를 쓰지 않았다. 오히려 어딜 가든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선생님의 눈에 드는 모범생이었다. 엄마아빠는 나이에 비해 성숙한 제아를 두고 영재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 이렇게만 하면 우리 딸은 우리처럼 살지 않을 거야. 최소한 명문대학은 가고, 강남에 살고, 상사명령대로 시키는 대로 하는 노예가 아니라 자신의 일을 하는 전문직의 삶, 1%까진 못돼도 적어도 5%는 되는 삶. 금수저는 아니어도 은수저 정도의 삶.

 

그런 제아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다. 


"아빠, 우리도 차 바꾸면 안 돼?"


친구 아빠의 외제 아빠의 얻어 탄 이후, 제아는 아빠의 국산 차를 타지 않으려 했다.


"엄마, 나도 몽클레어 잠바 사주면 안 돼?"


친구들과 같은 옷을 입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려야 한다며 제아가 투정을 했다.  


"나도 이번 방학 때 미국 보딩 스쿨 갈래. 친구들 다 간대."

"나도 아이폰 사줘. 애들이 air drop으로 사진 보내주는데 갤럭시는 못 받는단 말이야. 엄만 내가 따 당하는 거 보고 싶어?!"


제아는 주변 친구들이 타는 대로 입는 대로 하는 대로 똑같이 하고 싶어 했다. 급기야는 이사를 가자고도 했다. 같은 반에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가 없어 친구를 사귈 수 없다는 이유였다. 제아가 다니는 사립 초등학교는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서 시간 가량 가야 있는 곳이었다.


엄마아빠는 제아의 턱없는 요구사항에 조금씩 화를 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얼마나 너한테 더 해줘야 하니. 이 동네에서 네가 제일 비싼 옷을 입고 비싼 밥을 먹고 비싼 학교를 다니는데 뭐가 더 필요한 거야?!!!!


그러자 제아가 말했다.


뭐가 필요하냐고????!!!!!!!!!

유나만큼!

소연이만큼!

설희만큼!


그날 이후 제아는 더 이상 엄마아빠와 말을 하지 않았다. 밥도 먹지 않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엄마아빠는 늦은 퇴근 후 꽉 닫힌 제아의 방을 몇 번 두 그리고는 이내 각자의 침대에 돌아가 잠에 빠졌다. 우리 딸이 사춘기가 빨리 왔나 봐. 요즘 애들은 참 빨라. 저것도 한 때야. 그렇지.. 저러다 나아질 거야. 우리 딸은 다르니까. 착하니까.


하지만 제아는 어느 날, 집에 오지 않았다.

제아의 책상 위에는 노트 한 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곳에는 엄마아빠에 대한 원망만이 잔뜩 담겨있었다.


다른 부모처럼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부모,

다른 부모처럼 의사나 변호사나 사업가가 아닌 부모,

다른 부모처럼 예쁘고 키 크지 않은 부모,

다른 부모처럼

다른 부모처럼.








"엄마 제아처럼 우리 은서도 원망할까. 원하는 대로 해달란대로 해줘도 결국 원망하게 될까. 그렇다면 더 이상 이유가 없어 엄마."


태영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한 참을 울었다.

제아의 엄마는 태영의 단짝 친구였다.

집이 어려워 장학금을 주는 대학을 갔고, 당뇨 합병증으로 앞이 보이질 않는 엄마를 대신해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던 제아의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 태영을 붙들고서 한참을 울었단다. 그러면서 은서의 안부를 물었단다.


"은서는 잘 크고 있는 거지? 너는 은서의 마음을 알아 줄거지? 네 손으로 직접 밥 해주고, 옷 입혀주고, 잠재워주면서 잘 키우고 있는 거지?"


엄마는 태영의 어깨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급하게 찾아 입은 듯한 까만 정장 어깨가 하얗게 바래있었다.

그 천 위에 천을 덧대듯 엄마는 태영을 천천히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대한민국 청소년은 지금 큰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아동·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

지난해 국내 아동·청소년 자살률은 1983년 관련 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았다.

최근 통계청이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 제출한 ‘자살 사망자 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자살 사망자는 1만 3661명으로 2019년(1만 3799명) 이후 가장 많았다. 그중에서도 19세 이하 자살 사망자는 373명으로, 이 나이대 전체 사망자(약 1700명) 가운데 약 20% 수준이었다. 특히 19세 이하 인구 100만 명당 자살자(자살률)는 지난해 46.7명으로, 통계청이 사망 원인 집계를 내기 시작한 1983년 이후 40년 만에 가장 높았다.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40306/123830660/1


여성가족부의 2020년 청소년 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청소년의 17.5%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 본 적이 있고 학업, 친구, 생활고 등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청소년은 38.8%에 달했다. 또 26.8%는 심각한 우울감, 16%는 신경과민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이전 05화 제 5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