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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연 Mar 12. 2024

제 5화

"뭐라고?"


얼굴이 붉어진 박 부장이 소리를 지르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평소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소영은 부장의 반응에 버릇처럼 손톱을 물어뜯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소영의 눈에는, 부장이 아니라 부서장의 묘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얇은 붓터치로 그린 듯한 그녀의 날카로운 그녀의 입매가 움직인 것이었다. 너무도 미세하게 꿈틀 댄 입꼬리라 처음엔 의심했다. 하지만 분명, 그녀는 웃고 있었다.


"프리미엄 베이비 크림이 어떨까 말씀드렸습니다."

"아니, 김 대리, 마케팅팀장 얘기 이해 못 했어? 프리미엄 그거 아니라잖아. 사람들이  지갑을 안 연다잖..."

"근거는?"


박 부장의 말을 끊은 건 부서장이었다. 부서장의 차가운 목소리에 박 부장은 너 큰일 났다는 표정으로 소영을 노려봤다.


"V.I.B. Very Important Baby. 대세는 VIB 고객입니다."


소영의 말에 부서장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구미가 당기네 더 해봐 라는 뜻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부서장님은 지금 패션업계에서 유일하게 호황기인  어딘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더 자세하게."

"작년 대형마트의 매출 중에서 기저귀는 23%, 분유는 15%나 감소했습니다. 저출산 때문이죠. 근데 34%나 성장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강남에 위치한 백화점, 그중에서도 수입 아동 브랜드 매장이었습니다."


23%, 34%. 마케팅 회의에 들어오기 전에 외워둔 숫자였다.


'부서장은 숫자를 믿어. 그럴듯한 문구, 있어 보이는 전망치 다 안 믿는다고. 무조건 팩트, 숫자. 수치를 들이밀어야 해.'


송 차장의 충고였다. 부서장처럼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다던 송 차장은 부서장의 모든 것을 파고 팠다.


부서장은 헬스&뷰티 업계의 오스카상으로 일컬어지는 HWB 어워즈를 두 번이나 수상한 뷰티 제품의 개발자이자 기획자였다.  최근 촉촉 스킨 부스터를 출시해 1년 만에 1000억의 매출을 달성한 것도 그녀였다. 그녀의 촉을 흔들 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녀의 눈에 들고 그녀의 줄을 타기만 하면, 뷰티 업계에서의 성공은 보장받은 거나 다름없다고 송 차장이 그랬었다.


"그래서?"

"해야죠 우리도. 다들 그 파도를 타는데, 우리가 안탈 이유는 없잖아요."


소영의 말투는 매우 공격적이었다. 확신이 없는 사람을 부서장은 싫어해. 그러니까 일부러라도, 더더욱 강하게 말해야 해. 왜 남자들이 잘 쓰는 거 있잖아, 허세, 허풍 같은 거.


송 차장의 말대로였다. 부서장은 소영의 말투에 쓰읍 하며 입에서 소리를 냈다. 그녀가 만족스러운 먹잇감을 발견할 때 하는 버릇이었다.


꽉! 이 번엔 너다!!










강남에서도 가장 땅값이 비싸다는 명품 백화점 4층. 그곳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고급진 아이 용품만 모여있어 옆 나라 관광객도 필수 코스로 방문한다는 일명, '럭셔리 베이비 플로어'였다.


천연 옥수수 성분으로 만들어 피부 자극이 적다는 프랑스산 기저귀,  100% 실리콘 재질로 만들어져 인체에 무해하다는 미국산 젖병, 솔잎 한우, 남해 달고기, 지리산 봄동 등 흔히 볼수 없는 제철 식재료로만 만든다는 병 이유식, 명품 디자이너와 협업해 만들었다는 네덜란드산 유모차, 북유럽산 소나무를 사용한 덴마크 수입 가구까지.


"결혼 예정이세요? 이게 유모차계의 벤츠예요. "


단정한 유니폼을 입은 판매원이 소영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소영은 결혼을 앞둔 신부 마냥 눈웃음을 띄며 유모차에 붙은 가격표를 봤다. 170만 원. 소영은 내적 비명을 질렀다. 눈 씻고 봐도 17이 아니라 170이다. 미쳤나 봐. 저런 걸 애한테 태운다고?!!!


설마 몸에 바르는 것도 그럴까.

베이비 스킨케어 매장을 찾았다. 한 눈에도 고급스러운 패키지를 하고 있는 로션과 워시, 심지어 향수까지 있었다.


' 세계적인 조향사 프란시스 커정이 과일과 코튼, 은은한 꽃향으로 조향한 제품입니다. 알코올이 들어가 있지 않아 아이에게도 직접 뿌릴 수 있어요. 아이의 뇌를 자극시켜 보세요.'

정성스레 적혀있는 제품 설명에 소영은 기가막혔다.


투명한 병에 담겨져 있는 바디로션을 집어 들었다. 피부 보호 특허 성분의 허브가 함유되어 있다는 라벨지가 붙어 있었다.  소영은 열심히 제품 사진을 찍고 뚜껑을 열어 향을 맡아봤다. 라벤더와 레몬 그라스 향이 섞인 오묘하고 달달한 냄새가 났다. 소영은 그 느낌이 잊혀질라 폰을 열어 메모를 했다.


"아유 뭘 그렇게 꼼꼼히 살피세요? 아 아기 엄마가 아니라 어디서 나오셨나."


판매원의 말에 소영은 당황했다. 경쟁사에서 제품 테스트하러 온 걸 판매원이 단박에 눈치를 챈 것이다. 아, 그냥 법카로 사갈 걸 그랬나. 내 돈도 아닌데 몇 푼 아낀다고 나도 참.


"혹시 샘플 같은 건 없나요? 아이 피부에 맞을 지 몰라서. 한 번 써보고 싶은데."

"이런 제품은 샘플 안나와요. 다들 그냥 입소문에 사러 오는거지. 강남 구찌 조리원 알죠? 거기에서 쓰는 제품이에요 이게."

"아.. 그래요. 대단.. 하네요."

"어디에서 나오셨어요? 애틀란틱 코리아? 아뮤 퍼시픽? 베낀다고 더 잘팔리는 거 아닐텐데. 사람들 국산 잘 안사요. 프랑스, 덴마크, 뉴질랜드.. 물 좋고 공기 좋은 데서 만든 거 사지. 엄마가 아니라서 모르시는구나."


저건 또 무슨 허세야. 국산을 안사고 외제만 산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사대주의야.


"아, 전 엄마는 아니지만 이모예요. 조카 줄 건데 얼마나해요 이거?"


판매원의 태도에 발끈한 소영이 호기롭게 물었다.

그러자 판매원은 대답이 아닌 질문을 던진다.


"혹시 식스 포켓(six pocket)이란  아세요?"

"네? 식스 뭐요?"

"아이가 태어나면 6개의 주머니가 열린대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주머니. 근데  그게 요즘은 에잇(eight) 포켓으로 바뀌었어요. 결혼하지 않은 이모, 고모, 삼촌 주머니도 열린다는 거죠. 하하하. 웃기죠."


판매원의 웃음에 소영도 따라 웃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그러니까 얼마냐고.


"그러니까 이모도 포켓 열어야 한다구요. 한 병에 11만 6천원. 골드미스들한테는 껌값이죠? 커피 몇 번 안 마시고 조카 사주면 되는 돈. 아시죠, 아이의 오감은 어렸을 때부터 자극시켜줘야 하는 거. 그래야 좋은 이모 소리 들어요. 나도 여기서 이러고 있지만 아들 딸 둘 다 영재학교 보냈고 외고 입시 준비해요. 다들 나한테 엄청 물어봐. 어떻게 애를 그렇게 잘 키웠는지. 별 거 없거든요. 엄마가 늘 부지런히 움직여야 해. 부지런히 듣고. 그래야 내 자식은 나랑은 다르게 살지."









"아이스 캐러멜마끼아또 주세요. 제일 큰 거로."


소영은 4층 구석에 있는 카페에 앉아 차가운 커피를 단 숨에 들이마셨다. 아니,  작은 병 하나가 11만 6천 원이라고? 사줄 돈으로 기저귀 수 십 장을 사겠다.  맛있는 커피를 왜 포기해. 커피 하나에 6천 원인데, 그럼 나보고 거의 20번의 행복을 포기하란 거야? 내가 그런다고 은서가 행복해?! 그런다고 은서가 영재가 되고 로열 패밀리가 되냐고.  개소리야.


소영의 중얼거리는 소리에 옆 테이블에 앉은 엄마 무리가 흘긋 쳐다봤다.

그러다 이내 자신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어뜩해 나 클릭 실패했어. 애한테 미국 선생님 나오는 유치원 보내 준다고 약속했는데 어뜩해."

"그러니까 내가 전문 업체 쓰라고 했잖아. BTS 콘서트 티켓 대행한 덴데, 거기 매크로 써서 성공률 높다니까."

"그게 뭐 업체까지 쓸 일인가 싶었죠. 일타 수강 신청보다 더 어려울 줄 누가 알았나."

"올해는 1초 컷이었다면서요. 시계 맞춰놓고 8시 59분 58초에 들어간 사람은 됐대요. 59초는 안되고."

"헐. 대박. 대치 영유 입학이 그렇게 빡센 거였어요? 고3 일타 강의 수강 신청 얘긴 들어봤어도 유치원생 영유 입학 전쟁은 첨 듣네"

"어디 그것만 전쟁이야? 조금이라도 시설 좋고 선생 훌륭하다는 어린이집은 애 태어나면 바로 대기 걸어놔야 들어가."

"대기요?"

"설마 둘째 애 대기 안 걸었어? 아 아라 엄마 첫째는 미국에서 키워서 몰랐구나. 지금이라도 대기 걸어. 안 그럼 동네 가정 어린이집 보내야 돼. 그런 덴 애 밥도 잘 안 줘. 알지? 원장이 애 때리고 사고치는 거, 그런 데 애 보낼거야?!"

"아 안되면 뭐, 이모님 써야지. 요즘 조선족 이모도 한 달에 300 줘야 한다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직장 그만두지 말고 일할 걸 그랬어요. 남편 전문직이래봤자 벌어오는 돈 뻔한데 앞으로 애 영유랑 사립초는 어떻게 보내나 싶어요. 어휴 답답해."

"조선족은 쓰면 안 돼. 돈 백 더 주고 한국인 이모 써. 조선족은 만날 애 유튜브나 틀어주고 한국어는 어눌해서 애 망쳐. 요즘 젊은 이모 중에 인서울 대학 나오고 영어도 좀 하고 애 몬테소리 교구랑 영재 퍼즐 같이 갖고 놀 수 있는 사람 있어. 그런 사람 알음알음 아는 사람 집만 봐주니까 영재 엄마 모임에 얼굴 자꾸 비춰. 자기 애 케어 못 받아서 금쪽이 되는 꼴 보고 싶어? 우리 형님, 변호산데 애 신경 안 쓰고 친정 엄마한테만 맡겨뒀다가 최근에 ADHD 판정받았잖아."

 

소영은 큰 눈을 껌뻑였다. 다시 사무실로 복귀해 오늘 조사한 제품들의 목록을 정리하고 보고해야 하는 소영이었지만,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몰랐던 세계였다. 평생 공부만 하고, 지금은 일만하는 언니가 저런 세상을 알까. 아무런 대책 없이 애만 낳으면 알아서 클거라고 생각하는거야? 


소영은 재빨리 휴대전화를 열었다.


'언니, 은서 어린이집 대기 걸어놨어?'


소영은 불안한 듯 손톱을 깨물었다.

부서장 앞에서도, 부장 앞에서도 하지 않던 버릇이었다.


하지만 1분, 2분, 3분이 지나도록 숫자 1은 없어지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소리샘으로 넘어갈 때까지 언니 태영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금 일이 중요해? 저기 엄마들은 온갖 정보를 다 공유하면서 좋은 환경에서 애 키운다고 애쓰는데

지는 8학군 교육에 비싼 과외에 엄마 보살핌 사랑 듬뿍 다 받아놓고 은서는 아무렇게나 내버려 둬서 금쪽이 만들거야?!!! 전화받아!! 김태영!!!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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