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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연 Mar 04. 2024

제 3화


소영의 기억 속 집은, 늘 반짝였다.


욕실은 육체의 더러움을 씻고 닦는 곳이 아니라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곳인가 헷갈릴 만큼 물 때는커녕 물자국도 없었다.  거실 구석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한 장식장엔 무료한 얼굴을 한 석고상과 나무 조각들이 방금 세수한 듯한 말끔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엄마의 솜씨였다.

엄마는 가만히 앉아 누워 쉬는 것을 죄스러운 사람처럼 바지런히 움직였다.  하루에도 몇 번을 닦고 쓸며 먼지를 털어냈는지 집 안의 걸레들은 제 몸을 불사르며 해지다가 장렬하게 조각조각으로 전사했다. 그것으로도 마음이 차지 않으면 엄마는 몸무게의 두 배가 넘는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느라 땀을 흘렸다. 마치 집의 질서는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증명하듯이, 마치 정리정돈이 자신의 존재의 이유나 되는 듯이 매일 매시간 부지런을 떨었다.



하지만 이제,

집은  늘 어지럽다.


아이는 수시로 입맛에 맞는 젖병을, 보송보송한 기저귀를, 흥미롭게 바라볼 장난감을, 심심함을 달래 줄 쪽쪽이를 찾았다. 정리정돈이 '제자리에 물건을 정렬하는' 의미라면, 아이가 있는 집에서 '제자리'는 좀 다른 의미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물티슈, 손수건, 기저귀, 물이 놓여 있어야 하는 것. 엄마의 동선에 매우 효율적이고 짧은 공간 안에 모든 물건이 자리할 것. 엄마는 자신의 정리정돈을  다시 재정의 하고 있었다.


"좀 치워."라는 말을 하려다 소영은 그만 입을 닫았다.

환갑을 넘은 엄마의 늘어진 목덜미와 염색의 때를 놓쳐 거친 새치가 뒤덮은 머리를 보면서 소영은 엄마의 노년이 참으로 피곤하고 불쌍하다는 생각하고 있었다.


"소영아 그 당근인가 뭔가 하는 중고 물품 사는 데서 기저귀 갈이대 좀 찾아봐. 유튜브에서 봤는데 그게 꿀 육아템 이래. 육아는 템빨이라대. 그걸 하면 허리가 안 아프대."


엄마는 외손녀를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고 완벽하게 키우고 싶어 했다.  대충 키워봐, 그 잘나고 똑똑한 첫째가 날 얼마나 원망하겠어. 요즘에 전문직 엄마들은 유기농에 명품에, 제일 좋은 것만 먹이고 입힌다는데. 엄마의 말에 아빠는 극성이라며 툴툴거리면서도, 외손녀를 가끔 안아만 줄 뿐 기저귀 한 번 갈아주지 않았다.


엄마는 독박육아를 감내했다. 소영과 태영을 키울 때에도 정보가 제일 중요하다며 유명한 강남 학원 문을 닳도록 드나들었던 것처럼  외손녀를 등에 업고, 어르며 틈틈이 유튜브를 보고, 두꺼운 서적을 빌려와 공부했다.


소영은 새벽마다 허리 찜질을 하는 엄마를 몇 번이고 목격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그러게 누가 고생을 사서하래. 다 늙어서 무슨 육아야. 똑똑하고 잘난 딸을 둔 죄네. 소영은 차라리 엄마가 몸살이라도 나서 육아를 못했으면 했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아픈 것은 걱정이 됐다.


소영은 중고마켓 어플을 열어 기저귀 갈이대를 검색했다. 나무로 된 것, 플라스틱으로 된 것, 가격은 5만 원에서 20만 원까지 다양했다. 소영은 그중에서 가장 저렴한 5만 원짜리를 올린 판매자에게 챗을 보냈다. '스마일마마'라는 이름의 판매자는 소영이 인사를 건네자마자 파리 날리는 상점에서 첫 손님을 맞은 주인장처럼 대화를 쏟아냈다.


"혹시 소서는 안 필요하세요? 바운서도 있어요. 이거 있으면 아이  잠자거든요. 소서는 아이 앉혀놓으면 설거지도 할 수 있고요. 노래 나오는 모빌도 있어요. 3개 다 사시면 12만 원에 드릴게요."


소서는 뭐고 바운서는 뭐야.  검색 창을 열었다. 육아하는 엄마들끼리 돌려 막기 하듯 구매해서 쓰다 파는 육아템의 목록들이 쏟아졌다. 소영은 몰랐던 세계였다.


"사고는 싶지만 차에 안 실릴 거예요. 차가 작거든."


소영은 자신의 소형차를 떠올리며 말했다. 동시에 좁은 집도 떠올렸다. 저 많은 것을 가져오면 집은 개판이 아니라  애판이 되고 말 거야.


"아, 그런 문제라면 제가 갖다 드릴게요.  아이는 친정집에 잠깐 맡겨놓고 가죠. 저도 오랜만에 바깥바람도 쐬고요."









스마일마마는 3개월 만의 장거리 외출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지나치게 들떠 보였다. 골목길에 차를 세워두고서는 장터를 개시하는 장사꾼처럼 부피가 큰 육아용품을 하나하나 꺼내놓기 시작했다. 소영은 그 자리를 당장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런 소영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마일마마는 알록달록 화려한 물건들의 작동법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바운서 아래에 살짝 묻은 얼룩을 발견하고는 우 크게 당황하더니 찍찍이를 북북 뜯어 분해하고는 왼쪽 것은 손빨래를 해야 하고, 오른쪽 것은 세탁기에 돌려도 된다고 설명했다. 소영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내 옷도 드라이하는 건 귀찮아서 안 사는 사람인데 손빨래라니요. 


저 멀리 창 너머에서 중고 거래의 현장을 보고 있던 엄마는 호기심을 못 이기고 은서를 둘러업고 나타났다.


스마일마마는 엄마를 보자마자 이제야 말 통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듯 매우 반가워했다. 은서를 보고는 먹는 분유 이름을 캐묻더니, 아이에게 분유토 냄새가 많이 나는 거 같은데 분유를 바꿔야 한다는 둥 독일산 분유가 좋다는 둥 각종 육아지식을 쏟아냈다. 결국 엄마는 처음 만난 육아 동지에 대한 애틋함을 버리지 못하고 스마일 마마를 집에 초대하고야 말았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 너 요 앞 마트 가서 주스 한 통만 사와."


방 문 너머로 들리는 두 여자의 소곤대는 수다를 엿듣다 설핏 잠이 들었던 소영은 꿈속에서 자신이 엄마가 되는 꿈을 꿨다. 매우 이질적일 것 같았던 상상과 다르게 소영은 마음이 몽글몽글하고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벌컥 열린 방문 소리 꿈에서 깬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아이씨. 깜짝 놀랐잖아!"

"너 손님 왔는데 이럴 거야?!"

"손님은 무슨. 집에서 놀다가 마실 나온 애 엄만데."

"말하는 거 하곤. 잔 말 말고 나가서 주스 한 통 사와. 애기 엄마가 보행기니 쿠션이니 젖병이니 몽땅 다 주고 가겠대. 어떻게 빈 손으로 보내. 하루종일 누워만 있지 말고  !!!"






집 대문 앞으로 스마일마마가 내려놓는 짐을 보면서 소영은 한 숨을 푹 쉬었다. 여자가 사라지면 대충 몇 개만 추리고 나머지는 버릴 생각이었다. 소영의 눈에는 보풀이 나고, 얼룩이 진 육아용품들이 쓸모가 없어 보였다.


"조심히 가세요."


 차 운전석에서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 스마일마마에게 소영은 주스 박스를 건네며 인사를 했다. 스마일마마는  뭘 이런 걸 하면서 예의상의 거절도 없이 트렁크에 직접 넣으라는 듯이 차 문을 탁하고 열었다. 소영은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개념 말아먹은 맘충이네 툴툴대며 차 뒤쪽으로 갔다. 열린 트렁크에 주스 박스를 넣으려는데 스마일마마가 다가왔다.


"발 사이즈 235?"

"네?"


이건 뭔 오지랖이야. 하고 미간을 찌푸리는 소영 앞으로 스마일마마는 신발 박스를 하나 꺼내 건넸다.


"이모라 했죠? 아이 아직 안 낳았죠?"


뭐래. 오지랖은 애기 엄마들 전매특허야? 이 여자가 미쳤나.


"이거 내가 밀라노에 출장 갔다가 비싸게 주고 산 수제화인데. 아이 낳고 골반이 틀어져서 못 신어서요. 보니까 잘 어울릴 거 같아."


스마일마마가 든 박스 안에는 새빨간 구두가 있었다. 그것도 굽  7센티는 족히 보이는 하이힐.


"저.. 구두 잘 신어요."

"알아, 요즘 젊은 여자들 힐 잘 안 신는다면서요? 근데 이런 거 하나쯤 갖고 있는 거 나쁘지 않아. 신발장에만 넣어둬도 든든한 마음이랄까. "

"그럼.. 그냥.."

"그럼 그냥 네가 갖지 왜 날 주냐 이 말하고 싶죠? 난 못 신어요. 안 신는 거랑 못 신는 거랑은 다르잖아. 있는 거 알면서도 못 신는 그 마음으로 살고 싶진 않거든 내가."


소영은 주저했다. 묻고 싶은 것도 있었다. 꿈에서 느꼈던 그 느낌, 스마일마마도 느꼈을까.


"후회, 하세요?"


스마일마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혀. 아이는 너무 예쁘거든. 날 닮은 내 분신을 낳는다는 건 진짜 멋진 일이긴 해. 근데 미리 알았으면 지금과는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은 해요.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거든요. 아이를 낳으면 내가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거, 예전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할 수도 있다는 거. 이모는 아이 낳을 거예요?"

"아.. 뇨. 싫어요 전."

"낳을 거면 충분히 고민해 보고, 알아보고 낳아요. 알고 결정하는 거는 다른 차원이니까. 쉬워 보이지만 목숨 걸고 하는 일이에요, 그쪽 인생을 거는 일이고."



소영은 그녀가 가버린 후 한 참을 멍하게 서 있다가

얼굴 모르는 아이와 그 아이를 낳아 기른 엄마가 남기고 간 육아용품을 하나 둘씩 조심스레 옮기기 시작했다.


그 날 밤, 소영은 스마일마마가 남기고 간 바운서 덕분에 푹 잠을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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