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8350
주말은 늦잠이다. 알람없는 아침, 뒹굴뒹굴 뒤척뒤척. 느지막하게 일어나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본다. 야근 탓에 개봉영화를 챙겨 보지 못한 게 몇 달 째다. 그 사이에 보고싶었던 영화는 속편까지 개봉했고, 한국 영화 거장이라던 감독은 유력한 수상자라더니 빈 손으로 왔단다.
잠에서 깬 신랑은 얼려두었던 식빵 두 어 조각 꺼내토스트기에 넣고 커피 한 잔을 내린다. 찌개와 흰 쌀밥을 찾는 남자가 남편이 아닌게 천만다행이다. 당신의 아들이 아침에 밥은 제대로 챙겨 먹는지 시댁은 그것이 그렇게 궁금하고 신경쓰인다던데, 시댁과 통화한지도 몇 주가 흘렀다. 그저 생사 확인 차 통화하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게 암묵적 룰이다.
어제 오늘 미세먼지가 적당해서 마음 놓고 창문을 열어두었더니 후덥찌근하다. 조금 더 더워지면 방에 들어가 작은 에어컨을 틀면 돼. 결혼 후 맞이하게 된 첫 여름, 전기료라도 아껴보자며 본 합의였다.
“세탁~”
땀에 절은 와이셔츠와 소매가 까매진 블라우스, 한달 내내 돌려입은 실크 치마를 들고 아저씨를 불렀다.
“이거 까맣게 된 거 좀 지워주세요.”
“네. 공지 받으셨나요? 저의 세탁 요금 4천원으로 인상했어요. 저희가 사람을 두 명 쓰는데 월급을 올려줘야해서.”
이제는 집에서 다리미질까지 해야 돼? 투덜댔더니 아저씨가 민망해하며 자리를 뜬다.
오후 1시. 슬슬 배가 고프다.
주중에는 둘 다 스케줄이 바빠 장을 보지 못했다. 인터넷 주문이 곤란하다고 제철 과일과 신선한 채소를 안 챙겨 먹으면 지금의 저질 체력, 체질이 만성화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오늘 감자랑 과일 30프로 할인이래. 신랑이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그나마 덜 분비고 주차가 편한 마트를 찾았다. 이르다고 생각했는데 주차까지 한 시간 넘게 걸렸다.
자두, 천도복숭아를 담았다. 몇 개 안담았는데 만원 넘게 찍힌다. 두 어개를 덜어냈다. 카레에 넣을 감자를 찾았다가 기함을 했다. 한 알에 1,000원. 옆에 쌓여져있는 당근은 1,200원, 배추 한 통은 4,000원이다. 발길을 돌려 주전부리와 통조림, 음료수, 라면을 담았다. 새로나온 비빔라면, 메밀라면을 몇 번이나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1+1 이벤트까지 기다릴 생각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라면 그릇, 같이 먹는 김치 등을 붙이는 끼워 팔기도 진행할 것이었다. 대신 양 많고 저렴한 마트 자체 브랜드 상품을 담았다. 맛은 그저 그렇지만 죄책감없이 허기를 달래기엔 안성맞춤이다.
“총 113,000원입니다.”
얼마요? 놀란 신랑이 계산대 모니터를 한참 들여다봤다. 먹고 싶었던 고기랑 과일은 담지도 않았는데.갈팡질팡하니 나이 지긋한 캐셔 아주머니가 눈짓으로 재촉한다. 장보기의 즐거움은 양 손 가득 느껴지는 묵직함이라던데 배달 시킬 것도 없이 양 손에 나눠드니 가볍기만 하다.
휘발유 1,600원. 창밖으로 보이는 주유소 간판에 신랑은 한숨 대신 니코틴을 찾았다. 돈 아낄려면 그것부터 끊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랐지만 삼켰다. 주유소에 붙어있는 편의점에는 5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멍하게 앉아 축구를 보고있다. 저 사장은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했대. 신랑은 친절했던 알바생은 잘린 모양이라며 기어이 한숨을 쉬었다.
카레를 끓였다. 한 솥 가득, 최소 3일은 데워가며 먹을 수 있는 신혼 단골 메뉴다. 하얀 햇반 위에 팔팔 끓는 카레를 부어 말없이 허기를 달랬다.
종편이 생긴 이 후 채널은 늘었지만 볼 만한 프로그램은 줄어든 느낌이다.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보아도 비슷비슷한 연예인들이 떼지어 나와 먹는 게 전부다. 여행하며 먹고, 수다 떨며 먹고, 애 보며 먹고, 경쟁하며 먹는다. 후르르릅 짭짭 쩝쩝. 의도치않게 남들 먹는 소리로 태교 중이다.
뒹굴뒹굴 뒤척뒤척. 소화시키니 저녁 때다. 치킨 시켜 먹을까. 덥고 습한 날에는 배달음식이지. 시즈닝 치킨, 후라이드 치킨, 닭강정, 전기통닭. 많은 선택지 중에 쿠폰이 적용되는 걸로 주문했다. 2천원 할인에 기분이 좋아졌다. 같이 즐길 2천원짜리 수입맥주는 맛도 좋아 오늘의 유일한 낙으로 삼자 싶다. 자기야, 수입맥주 오른대. 신랑은 믿지 않았다.
딩동.
왔다!
맛있게 드세요. 아저씨, 안가신다. 배달비 주셔야죠. 2천원이에요.
치킨은 맛이 없었다. 신랑은 맥주 한 캔을 더 땄다.
몇 달 후면 딸이 태어난다. 아이가 살아갈 앞으로의 세상은 더 팍팍하고 고단할 것이었다. 불안한 시그널들이 주말 내내 경고음을 울려댔다. 아이를 안 낳기로 결정했다던 딩크족 선배가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는 딸한테 몹쓸 짓을 한 걸지도 몰라. 임신한 몸으로 맥주 한 모금 못하는게 한이다. 아 목말라.
한가지 망할 놈의 것 다음에 오는 또 다른 망할 놈의 것들 -원스턴 처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