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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Jul 27. 2019

그래도 집은 사고 싶다

집을 사야겠다고 하면 사람들 반응은 두 가지다.


“지금 너무 올랐으니 사는 건 바보야. 떨어지면 사. 인구는 줄고 있고, 새 집은 점점 더 늘고 있잖아?”


아니면


“사. 지금이라도. 근데 살 수는 있어? 사면 좋지 능력만 있으면.”


2년 전 집값이 떨어질 거라는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집을 샀던 친구 부부. 그들의 신혼집은 최근까지 3억이 올랐다고 했다.


빚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며 차라리 전세를 살고 저축을 하겠다던 다른 친구 부부는 아직까지도 무주택자이다.


똑같은 출발선에서 섰던 두 커플이 2년 만에 5억 가까이 자산 차이가 벌어진 이야기. 너무 많이 듣고 접해서 새로울 것 없는 뉴스.


집을 사지 않았을 뿐인데 인생 전체가 루저로 전락한 느낌이라는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그런다.


“인생은 원래 선택이잖아. 대학교, 전공, 직업, 남편. 근데 부동산은 유난히 사람들이 억울해한다. 배 아파하고. 자기 선택을 못 받아들이고서. 현실을 부정하면서. 집값은 꼭 떨어질 거라고 자기 위안하면서.”


내 얘기인가..





직장에서 1시간 거리의 집 한 채. 1년에 한 번 정도는 해외여행할 수 있는 마음과 육체의 여유. 특별한 날 가족들과 근사한 곳에서 코스 요리에 와인 한 잔 할 수 있는 작은 사치.


그 누구도 트럼프처럼 이건희처럼 부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적당한 여유로움과 풍요로움이면 그걸로 족하다. 근데 이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이 ‘평범’이 그렇게 큰 욕심이던가.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법도 잘 지키고 공부도 충실히 했고. 노인들한테 자리 양보도 잘했고. 화장실도 깨끗이 쓰고 분리수거도 열심히

하고..... 근데 왜.


9 to 6가 아니라 7 to 12 인 회사생활. 때려치워야지 싶다가도 월급이 띵동 하고 들어오면 뽕 맞은 사람처럼 또 꾸역꾸역 한 달을 버틴다. 이마저도 여기 들어오겠다고 수십의 자격증과 토익 시험, 면접을 거쳤다.


근데 집 한 채 없다니? 이게 무슨 신의 저주인가.




그런데 이제 세상 탓만 하기는 싫다. 어차피 절을 떠나지 못할 중이라면 절의 법도에 수긍하고 살아갈 수밖에.


슬픔. 좌절. 냉소.


비웃고 욕해봤자 세상은 변하지 않으니까. 나 혼자 앉아서 술을 들이켠다고 정치를, 자본주의를 욕한다고 꿀이 떨어지는 건 아니니까.


수요와 공급.

화폐경제와 통화량.

실물자산과 유동자산.


어쭙잖은 지식을 총동원해보면

이 좁은 땅에서 땅이란 것은  건물이란 것도

결국 희소 해질 거고 값은 오를 것이다.


정답을 너무나 잘 아니까 너무나 어려운 문제.


스스로 노동하기보다 남의 노동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레버리지) 가르치는 수 만의 서적들.

어렵게 번 돈이 쉽게 나가고

쉽게 번 돈이 쉽게 불어난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와 숫자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새나라의 새일꾼, 개미와 베짱이, 티끌 모아 태산 등등 어렸을 적 달달 외워 진리인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배신감이라니. 막막함은 또.


수 십장의 오답노트 같은 인생의 페이지들을

처음부터 다시 쓰고 싶은 심정이다.


맥주가 당기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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