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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리스 Aug 08. 2019

카톡 보내기 전에, 잠깐만.

모닝톡에 대한 단상

아침 6시였다.


카톡 왔숑



내가 원하지 않는 시간에, 알람도 아닌 메신저가 울렸다. 처음엔 놀랐다. 폰을 열어본 후엔. 불쾌했다. 그러다 분노했다.


“깜박할까 봐 생각났을 때 보내는 겁니..”


로 시작된 카톡 왔숑은 이후로도 10번이나 울리다 멈췄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시간, 발신자의 ‘깜박할까 봐’ 덕분에 나도, 신랑도 불쾌한 아침을 시작하게 되었다.




직장 내 괴롭힘.


지난 7월 16일, 정부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출처_중소기업뉴스


괴롭힘이라고 하니 막말, 고성, 왕따 등 인격 모독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사실 ‘심리적 괴로움’은 아주 사소한 상황에서, 그것도 아주 빈번히 벌어진다. 당하는 사람도 문제를 일으킨 사람도 모르게 서서히 스며들듯, 선을 넘을 듯 안 넘을 듯하며.


모닝 카톡도 마친가지다.


자기가 편하자고 

자기가 편한 시간에 

자기가 편한 방법으로 일을 ‘쳐내려’ 하는 건

결국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을 시간에

불편하지 않은 방법으로 일을 ‘공유하는’ 마음이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모두가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거 아니던가.

우리 같이 성공한 회사에서 높은 연봉에 보너스까지 두둑이 받자고 하는 것 아니던가.


조직의 성공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같은 운명체끼리 조금 편하자고, 조금 앞서가자고 남을 이용하고 밟고 서는 동안 나도, 그 누군가의 발아래 놓일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오진호 직장 갑질 119 총괄 스태프는 직장 내 괴롭힘 법의 핵심은 '처벌'이 아닌 '자각'에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작은 날갯짓이 누군가에게는 거대한 태풍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자각도 자극이 없으면 어려운 법.


그래서 상상했다.


공용화장실 문구. ‘잠깐 너 거기 스톱!’


공용화장실에서, 문 열고 가려는 당신에게.

잠깐! 당신이 방금 저지른 일들, 마무리는 하셨겠지? 하며 깨달음을 주는 문구처럼.


저녁 9시 혹은 아침 9시 이전

메신저를 여는 모든 사람에게

“당신이 가볍게 날린 메시지가

누구의 달콤한 잠을 날려버리고

누구의 은밀한 사생활을 날려버리며

누구의 여유로운 일상을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경고창’이 따란! 하고 뜨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아니면 이런 경고창이라도



그래서 부디

자기도 모르게 갑질을 하고 계실 모든 을들이

0.01초라도 멈춰 ‘편한 것’인지 ‘만만한 것’인지 헷갈리는 또 다른 을의 처지를 헤아릴 수만 있다면 좋겠다.



잠깐의 망설임과 순간의 배려.

내가 잠깐 불편하면 모두가 해피하다.


모두가 꿈꾸는

‘그나마 괜찮은’

‘그래도 견딜만한’

직장생활을 위해.


출퇴근러들 모두 카톡 열기 전에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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