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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강 Aug 10. 2020

도토리 다람쥐

도토리묵을 맛보기 위해 다람쥐를 굶기지는 않는지

교장실에 손가락만 한 도토리 다람쥐가 한 마리 있다. 작년 초록학교 페스티벌에서 자연물을 활용한 동물 만들기 체험 활동으로 만든 것이다.


도토리 뚜껑을 뒤집어 받침으로 깔고 크고 동그란 도토리는 몸통으로 하고 길쭉한 도토리를 위에 얹어 머리로 했다. 눈은 까만 쥐눈이콩으로 붙이고 귀는 호박씨로 만든 것이다.

길쭉한 강아지풀로 만든 꼬리까지 보면 영락없이 쪼르르 달려가는 아기 다람쥐 같다.

교장실을 방문하는 아이들은 나무 조각 받침대에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있는 귀여운 도토리 다람쥐를 보면


 "아이! 귀여워라."


하며 톡 건드려 보거나 한참을 들여다보며 신기해하고 관심을 보인다.

난 그런 모습을 보며


'예쁜 것을 보고 예뻐할 줄 아는 너희들이 더 귀엽단다.'


생각하며 웃곤 했다.
작년에 몇 번 아이들의 시간이 날 때 학교장과 함께하는 예술교육 시간을 운영했다. 생활 속의 물건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나만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학교 숲과 텃밭 활동을 할 때 신는 장화에 스펀지로 모양을 내어 다양한 꽃을 찍었더니 평범한 장화가 자기만의 명품 장화가 되었다. 장화를 신은 아이들의 발걸음이 더 발랄해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겠지?


올 가을에는 뭘 해볼까? 고민하다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도토리 다람쥐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초가을 청주근교 산에서 아이들 인원수만큼 크고 동그란 도토리와 도토리 뚜껑을 주웠다.

호박씨도 말려두었고 쥐눈이콩은 우리 집 잡곡통에서 챙기면 될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얼굴로 쓸 길쭉한 도토리를 못 구했다는 것이다.


주말 산행을 갈 때마다 발밑을 내려다보며 부지런히 찾았지만 못 찾았다.

심지어 이젠 둥근 도토리도 눈에 띄지 않는다.

매년 산을 오르다 보면 늦가을까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것이 도토리였는데 말이다.

올해는 썩은 도토리도 잘 없다.

도토리는 나무에서 떨어지면 금방 썩거나 벌레가 먹는다지만 그 흔적도 보이지 않으니 참 이상하다. 늦여름 태풍이 잦더니 다 떨어져 썩어버렸나?

벼농사가 풍년이면 가을 산에 도토리가 없다더니 그래서인가? 다 어디로 갔을까?

부지런한 다람쥐, 청설모, 멧돼지가 겨울 곳간을 채우느라 다 가져갔다면 다행이지만

그게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낙가산을 등산하는데 어떤 부부가 깊숙한 산 비탈진 곳에서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남편이

"저런 곳까지 와서 도토리를 저렇게 싹싹 긁어 가면 동물들은 뭐 먹고살아!"


큰소리로 역정을 내며 말하길래 그 사람들이 들을까 봐 조마조마했었다.

그때만 해도

 '뭐 도토리가 많이 떨어질 텐데 조금 주울 수도 있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도토리가 없다. 정말 올 겨울 다람쥐들은 무얼 먹고사나 걱정이 되었다.


엊그제 도봉산 등산로 입구에 투명 아크릴로 만든 「도토리 저금통」이 설치되어 있었고 도토리들이 들어 있었다. 오동통한 도토리가 귀엽고 예뻐서 무심코 주워오는 한두 개라도 모아 산에서 겨울을 날 산짐승들에게 돌려주려고 모은다고 했다. 좋은 생각이다.

그날은 도토리 주울 생각은 아예 안 했다.

나도 올해는 아이들과 도토리 다람쥐 만들기로 한 일을 포기해야겠다.

도토리 다람쥐는 안 만들면 그만이지만 동물들에게는 생명의 문제다.

다음 산행 갈 때 모아둔 서른아홉 개의 도토리를 다람쥐들에게 돌려줘야겠다.

양이 적으니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굶주린 산짐승에게

눈이 번쩍 뜨일 일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올가을처럼 열매가 귀한 때에는 사람들은 많고 많은 다른 음식을 먹고 도토리는 동물들에게 양보하는 센스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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