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닭살 표현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큰 아이가 6학년 때, 1박 2일 캠프에 함께 참가했는데 거기서 한 엄마를 만났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조근조근 했던 말씨는 생생하게 내 머릿속에 박혀 있다.
"저는 사랑한단 말보다 고맙다는 말을 더 자주 해요, 전업주부라 집에만 있는데 남편은 열심히 일하고 받은 월급을 저한테 다 갖다 줍니다. 가장이니 당연하다고 하지만 안 주면 어떻게 하겠어요? 꼬박꼬박 성실하게 일하는 남편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담담하면서도 단호한 말, 행복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남편이 출근할 땐 설거지도 미뤄요. 엘리베이터 벨을 눌러주고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죠. 퇴근시간이 되면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남편 차가 보이면 문밖에서 기다려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남편을 맞이하며 수고하셨다고 하죠.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출근하는데 그까짓 설거지 천천히 하면 어때요. 가족을 위해 하루 종일 애쓴 가장이 돌아오는데 일일드라마 보는 것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100% 공감했다. 이거 더 해 달라, 저건 왜 안 해주느냐? 남들은 이러던데! 불평불만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집에 돌아와 남편을 바라보니 고마움과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변화는 마음먹고 실천하는 사람의 몫이다. 나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남편보다 늦게 출근할 땐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하고, 작은 일에도 고맙다 고맙다 말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어색해하며 바쁜데 안 나와도 된다거나 왜 그래? 하더니 내심 좋아하는 눈치였다. 한번 시작하니 고마운 일이 더 많아지고 감사할 일이 더 눈에 띄었다.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자 다툴 일도 훨씬 줄어들었고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자연스러워졌다.
언젠가부터 남편은 출근을 서두르는 나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눌러주며 지금 몇 층이니 얼른 나오라고 하고 짐을 챙겨주기도 한다. '챙겨주어 고맙다' 하면 '내가 더 고맙지' 담백하게 표현한다.
친구들 간의 대화에 남편들이 등장하면 칭찬보다 흠을 들춰내어 몇 마디 거들어야 쿨~ 한 사람처럼 여겨지는 듯하다. 남편을 칭찬하거나 애정을 표현하면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냐'라는 철 지난 유행어로 말문을 막아버리기도 한다. 그럴 때 가끔 그 엄마의 말을 전하며 내 경험도 곁들인다. 거기에 여기저기 들은 말도 풀어놓으면 완벽하다.
지적하지 말고 칭찬하라. 사랑한다는 말보다 고맙다고 해라. 사랑한다는 말은 추상적인 단어이지만 고맙다는 말은 행동에 대한 말이고 그것은 상대방을 더 구체적으로 감동할 수 있게 한다. 남편이나 가족, 동료가 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거나 못한 것을 탓하는 것보다 해준 것 하나 만에라도 고맙다 한다면 대화의 질이 달라지고 긴밀감과 호감도가 달라진다. 등 주옥같지 않은가!
지난가을, 셀레스트 헤들리의 『말센스』에서 '선생님이 되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조언한 것을 보고 아뿔싸! 얼굴이 화끈거렸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별걸 다 가르치려 한 건 아닌가? 다들 잘하고 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