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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강 Sep 29. 2020

버려진 가구를 바라보며

아파트 재활용함에 또 버려진 가구들이 가득하다. 오늘은 책장 1개와 책꽂이 2개, 콘솔 1개가 나와 있다. 다들 멀쩡해 보인다. 아직 쓰임새가 남아 있건만 왜 저리도 잘들 버리고 가는지 모를 일이다. 인근에 새로운 아파트 입주가 시작될 때마다 아파트 내 재활용함에는 집집이 버리고 간 물건들로 가득하다. 며칠 전에는 한 집에서 온갖 살림을 산더미처럼 버리고 가서 온 동네 사람들이 그거 봤냐며 수군거리기도 했다. 버리는 이유도 다양하다. 고장 나서, 작아져서, 싫증 나서, 유행에 맞지 않아서 등 가지가지다. 새 집의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는 것도 이유가 된다. 트렌드에 맞게 집을 꾸미고 싶은 것을 누가 막으랴!


내 경험에 비춰 볼 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10년 이상 더 사용할 수도 있다. 작아지거나 싫증난 것은 친구나 동료와 나누면 된다. 새 집의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면 페인트를 새로 칠하거나 천을 갈아주면 새로운 물건이 된다.


10년 전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됐다. 오래된 가구들을 그대로 가지고 이사했다. 새로 구입한 물건이라곤 낡아서 헤진 침구류뿐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경제적인 형편도 이유지만 아직 멀쩡한 물건들을 버릴 수가 없었다.


새 집의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황색 가죽소파와 여기저기 찍힌 흔적이 많은 20년 된 원목 서랍장이 문제였다. 생각 끝에 소파는 짙은 밤색으로 염색했고 서랍장은 친환경 페인트를 사서 아이보리 색으로 칠했다. 둘 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튼튼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 페인트 하나 다시 칠했을 뿐인데 30년 된 서랍장이라고 하면 다들 놀란다.


학교도 그렇다. 새 학년 청소를 시작하면서 교실 밖으로 내다 놓은 물건들이 많다. 손때가 묻었거나 조금 부서진 가구, 학습도구, 의자 등이다. 수납 가구가 귀하던 예전에는 그런 것이라도 주워다 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었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학교 환경도 많이 좋아져서 넉넉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버리기 전에 다른 곳에 필요한지 물어보고, 고쳐 사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면 좋으련만 내 맘일 뿐이다. 멀쩡한 것 몇 개를 골라 슬그머니 창고에 넣어 뒀다. 차마 버릴 수 없어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찾으면 줘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5년 전 일이 생각난다. 관기초에서 6개월간 교감을 할 때였다. 손님에게 교무실의 의자에 앉기를 권할 때마다 민망했다. 10년도 넘었다는 의자는 등받이와 앉는 부분에 때가 많았고 묘하게 얼룩져 있었다. 바퀴가 너무나 튼튼하고 멀쩡한데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리폼해주는 곳을 찾아 전화를 하니 개당 6만 원에 운반비 별도란다. 20여 개이니 150만 원이나 있어야 했다. 고민하다가 직접 천 갈이를 해보려고 천을 조금 구입했다. 의자 한 개를 분해해서 천을 갈고 조립해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20여 개를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직원들의 의견을 물었더니 좋다고 했다. 우리는 의자 20여 개를 시간 있을 때마다 분해하고 조립하는 대공사를 했다. 교장, 교감을 비롯한 행정실 직원, 교사들까지 모두 나섰다. 덕분에 꼬질꼬질했던 의자는 빨간색으로 산뜻하게 바뀌었다. 단돈 20만 원을 들여 리폼 한 의자들은 5년이 지난 지금도 교무실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시절 함께 했던 직원들을 만나면 그때 일을 추억하며 보람 있었고 즐거웠다고 이야기한다.



미세먼지가 온 세상을 뒤덮었던 지난주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환경은 점점 더 우리를 위협할 것이고 그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버리기 전에 한 번 더 쓰고 바꿔 쓰고 고쳐 쓰는 등 생활 속의 작은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껴진다. 창고 앞을 지나는데 내가 들여놓았던 가구와 물건들이 없어졌다.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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