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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꿍꿍이 많은 직장인 Dec 14. 2020

#24. 내가 골병 나면, 누가 날 위로해 주지??

내가 골병 나면, 누가 날 위로해 주지??

몇 년 전부터 날이 쌀쌀해지면 몸살 걸린 듯 몸이 안 좋아지곤 했는데 최근에는 유독 심한 것 같았다.


하루 좀 쉬면 괜찮을 줄 알았던 것이 며칠 동안 지속되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혈관 쪽 문제가 있으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작년 건강검진에 고지혈증이 좀 있던... 옆 팀에 누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던데...' 그런 갖은 상상들은 나를 내과로 인도했다.


원장님이 친절하다 해서 찾아갔는데 정말 설명을 잘해주셨다. 혈액검사, 심전도 검사, X-ray, 동맥경화 검사를 진행한 후 의사 선생님이 해주신 말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피 잘 흐르고 있고요, 젊으신 분이 고지혈증 때문에 혈관이 막힐 가능성은 정말 희박해요. 혈관 내부에 코팅막이 손상이 되어야 그 내부로 저밀도 콜레스테롤이 쌓이는 건데, 코팅막이 보통 30살 이후부터 조금씩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30대인 분이 고지혈증으로 인해 혈관이 막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아~네... 원장님, 그럼 제가 겪고 있는 이런 증상들은 왜 나타나는 걸까요??"


"아마도 혈관이 막히는 것보다는 '혈관 수축/팽창' 때문일 겁니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수면이 부족하면 혈관이 수축된 상태로 있는데 그러면 혈관이 막힌 것과 비슷한 증상들이 나타나곤 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다 보면 자율신경계 이상이 좀 올 수도 있고요."


나는 병원을 나와서 바로 자율신경계 이상에 대해서 검색해 보았다. 자율신경계 이상의 주원인은 스트레스와 수면부족이고 나타나는 증상은 다양했다.


자율신경계는 호흡, 소화, 생식기관, 체온조절 등 기능 조절을 통해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데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생략하겠다(10초만 인터넷을 검색해 보자).


쉽게 얘기하면 스트레스를 받으면 혈관이 수축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쉴 때는 혈관이 이완되고 심장박동이 느려지는 그런 것들을 조절하는 기능이다. 스트레스와 수면부족이 지속되면 그런 기능에 문제가 조금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깜짝 놀란 내용이 있는데, 소개해 보자면 이렇다 (출처 : 변한의원 블로그)

블로그에 나와있는 자율신경계 조증 증상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1. 무한증 (땀이 나오지 않는다)

2. 기립성 저혈압 (갑자기 일어날 때 어지러움)

3. 발기부전

4. 배변 기능 이상(빈뇨 등)

5. 모발 운동과 혈관 운동의 반응 소실

6. 식은땀

7. 수족냉증 혹은 손발이 붓는다

8. 몸의 통증을 평소보다 더 많이 느낀다

9. 특별한 원인 없이 머리가 무겁고 띵하다.

10. 감정조절이 어렵고 신경질적이게 된다.


이중 4~5개 정도는 달고 살고 있고, 8~9가지는 꽤나 긴 기간 동안 겪어봤다. 1번 무한증 같은 경우는 참 놀랐었는데, 더위를 많이 타고 땀이 엄청 많았던 내가 몇 년 전부터는 추위를 많이 타고 땀이 거의 나지 않게 되었다. 심할 땐 가을에 겨울 패딩을 입어야 체온이 유지될 정도였다. 10번 같은 경우에는 첫 부서에서 3~4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이상하리 만큼 화가 진정이 되지 않았는데, 그때는 별거 아닌 일에도 욕이 나올 정도로 참 민감했다.  

  



7시 출근 9시 퇴근.


퇴근해서 씻고 자다 보면 설비 고장으로 새벽 전화가 오고, 그럼 다시 출근하고... 새벽 전화가 매일 오는 건 아니었지만 한 번 문제가 생기면 며칠 동안 계속 연락이 오곤 한다. 그렇게 계속 연락을 받다 보면 밤귀가 참 예민해진다. 전화 와서 잠을 깨고, 전화받는 꿈 때문에 잠을 깨기도 하고, 윗집 휴대폰 진동소리에 잠이 깨기도 한다.


한 번은 고장 난 설비를 3개월 이상 운전을 해야만 하는 때가 있었다. 3개월 동안 밤/낮/주말/평일 상관없이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그 고생을 했으면 누군가 일찍 퇴근해서 쉬라고 말 한마디 해줄 만도 한데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의 몸 상태는 그 후로 더 급격히 안 좋아진 것 같다.


이 기간 이후 나타난 신체 변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달리기'가 안된다는 것이었다. 전력질주는 고사하고 조깅조차 힘들었다 (지금은 조깅 정도는 한다). 몸치였던 내가 그래도 자신 있던 건 지치지 않는 체력과 달리기였는데, 그 시기는 내게서 체력과 달리기를 앗아갔다. 더 이상 마음껏 달리지 못한다는 것이 내겐 꽤나 큰 충격이었다.


그렇게 스트레스로 가득 찬, 수면이 부족한 생활을 2~3년간 했다. 그리고 자율신경 조증 증상들을 하나씩 가지게 되었다.  (자율신경 실조증이라고 진단을 받은 건 아니다. 다만 동일한 증상을 많이 겪어봤을 뿐이다)


보통 힘든 일을 지속해서 할 때 '사람을 갈아 넣는다'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나는 그 표현을 100% 이해한다. 나의 건강을 갈아 넣어 회사 설비를 안정화시킨 것이다. 물론, 그 공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갈린 나의 몸 또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누가 알아주길 바라고 한건 아니지만, 나의 희생을 알아주는 이가 한 명도 없다는 건 꽤나 서글프다.



 

그때, 혼자서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내가 산재를 신청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스스로 내린 답은 '할 수 없다'였다.


우선, '자율신경계 조증'같은 증상은 증명하기가 어렵다. 병원에서 진단해 보면 모든 수치가 다 정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내가 아프다는 건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겪는 당사자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혼자만 앓기엔 너무 힘이 들어 주변 사람에게 얘기를 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정말이지 아프다는 얘기는 최악의 이야기 주제다. 같은 증상을 똑같이 겪어보지 않고서는 공감할 수도 없고, 그 사람이 나 대신 아파줄 것도 아니니 재미도 없고 해결책도 없는 주제가 되어 버린다. 아프다는 얘기는 친구 사이에서도 가족 사이에서도 할 얘기가 못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해 부서 이동을 했고, 지금의 부서는 일은 많지만 새벽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꽤나 개선되었다. 지금은 이 어려운 시기에 정상적인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에 나름 감사한 마음도 있다.


다만, 이렇게 몸이 아플 때마다 더 우울해지는 이유는


스스로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는 슬픔

알아주는 이도 없고 누구에게 맘 놓고 얘기할 수도 없다는 외로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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