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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꿍꿍이 많은 직장인 Dec 31. 2019

04 Com' back_젝스키스 (가족 / 동생)

'지그위따 시따뿌래'만큼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지그위따 시따뿌래 지그위따 시따뿌래

돈땁떠 시따뿌래 예아 뼤이베 또츄 뻬이베

쩌스빼큐 삐끼마리 코뮤게츄 삐끼마리

찌그대 찌그대

위이게떠 삐끼마리


무엇을 적어 놓은 건가 싶겠지만 사실 이건 노래 가사다. 

나와 동생이 어린 시절 함께 불렀던 아주 유명했던 노래다.

저게 뭔 노랜지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정상적인 가사는 이렇다.

Jigging with that shake that booty~ Jigging with that shake that booty

Don't stop that shake that booty~ Yeah Baby Don't you baby

Just Make you freak your body~ Come and get you freak your body

젝키 Dance 젝키 Dance

We will get the freak your body~

- 젝스키스 'Com Back' 도입부 -


바로 젝스키스 Com back 도입부이다. 

사실 나는 아직도 영어 가사보다 위에 가사로 들린다. 


나는 저 가사가 영어가 아니라 무슨 주문처럼 느껴졌고,

뭔 뜻인지도 모르고 동생과 함께 저렇게 부르곤 했었다. 


얼마 전, 저 노래가 뭔지 기억이 나냐고 동생에게 물으니 제목은 모르고 '찌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나와 동생은 저 가사처럼 서로 닮은 것 같으면서도 많이 다르다


나와 동생은 외모부터 성격까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그 이상으로 많이 다르다. 

이게 참 말로 표현하기가 힘든데,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의 차이? 중국집 볶음밥과 필라프의 차이?

근본은 같지만 느낌이 다른 그런 차이가 있다. 


서로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이 섞일 수 없는 막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치고받고 싸운 적은 별로 없지만, 성격차이로 사소한 트러블이 많았다. 내 말에 자꾸만 다른 소리를 내는 게 거슬리기 시작했고, 언제부턴가 그 반대의 목소리가 귀에 박히듯이 불편했다. 그리고 다른 목소리에 대한 대응으로 '무시'와 '냉소'를 선택했다. 


동생은 어렸을 때 부터 뭔가 모를 삐딱선이 있었고, 내가 선택한 '무시'와 '냉소'는 나름의 타당한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색안경은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동생의 다른 의견에 '무시'와 '냉소'로 반응한 건 대부분 나의 잘못이다


동생이 너무 까칠하게 얘기한 탓도 있겠지만, 어찌 됐건 나의 잘못이 더 크다. 어떤 존재, 어떠한 의견이 나와 섞일 수 없다면, 굳이 섞을 필요가 없다. 존재 그대로 놓아두면 되는 것이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고,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난 이 사실을 회사생활을 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 만나기 불편한 선임 유형 2가지를 꼽자면


1. 어떤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선임이 마치 '답'이 정해져 있듯이 말하는 사람


나와 선임에겐 수년의 경험 차이가 있고 나는 그 선임만큼 이해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은 쉽고 빠르게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내겐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 그리고 단지 경험이 많다고 해서 나의 의견이나 생각을 무시하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다.


2. '색안경'을 끼고 나를 대하는 사람


과거 저지른 실수들을 이유로 쉽게 색안경을 쓰고는, 벌써 수년이 지나도 '역시 너는 그런 인간이야'라고 나를 쉽게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못된 행동을 사과했고,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조금이라도 비슷한 상황이 오면 그런 식으로 빈정거릴 때가 있다. 만나기 불편한 순간이다.  


어느 날, 내가 동생을 대하는 태도가 회사에서 대화하기 불편한 사람들의 행동과 같다는 것을 느꼈다. 큰 격이었고, 크게 반성했다. 바로 동생에게 연락해서 미안했다고 말을 했다.


그 이후로는 '무시'와 '냉소'대신 '인정'과 '응원'을 하고 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할 때 대화가 시작된다는 말은 혈연관계에도 적용되는 진리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은 사실 좋은 점도 많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다름이 있어 참 고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는 옷을 지독히도 못 입었다. 그리고 내게 최고의 코디네이터는 동생이었다.


둘 다 한 번 산 옷은 오랫동안 입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같은 겨울 외투라도 나는 겨울 내도록 패딩 하나만 주구장창 입는 스타일이었고, 동생은 코트나 여러 옷을 상황에 맞게 잘 차려입곤 했다. 용돈 받아서 옷 사러 갈때 마다 부모님은 나의 패션센스에 놀라곤 하셨는데, 몇 번 그러고 난 이후로는 옷을 살때는 항상 동생과 함께 갔다.


그렇게 한 5년 동안 혹독하게 교육받은 결과 지금은 비교적 준수하게 코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중학교 성적 우수자들이 모이는 선발 집단이었다. 당시 가족들은 내가 그런 선발 집단에 있다는 것을 많이 자랑스러워 했다. 반면에 동생은 공부에 크게 관심이 없던 아이였다. 어머니께선 어떻게든 공부를 시켜보겠다고 노력하셨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노는 게 제일 좋다는 뽀로로 같은 아이였다.


 그랬던 동생이 , 어느 순간 공부 하겠다고 선언하고 공부 하기 시작하더니 고등학교 졸업할 때는 장학금을 받았다. 그리고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인지도 있는 대학교에, 자기가 원하던 과로 입학을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동생이 그렇게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한 계기는 나의 존재 역할이 컸다고 한다. 


형에게 지기 싫어서, (당시)잘 나가는 형과 비교당하기 싫어서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참 단순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기특하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잘 되었으니 참 다행이고, 나라는 존재가 자극이 되었다니 기쁜 일이다.




서로 다른 두 형제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싸우기도 하고, 미워도 하면서, 그 이상으로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 주고,

서로의 존재 자체로 자극이 되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동생과 연락을 못했다. 서로 살아가는 게 바빴던 탓이다.

연말연시를 맞이할 겸, '찌그데' 말고 '지그위따 시따뿌래'는 기억이 나는지 물어볼 겸,

내가 먼저 전화 한 통 해야겠다.

봉정사에서 동생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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