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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Vet May 09. 2019

[JIFF] 개봉 촉구! 인상 깊었던 Best5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마주한 영화들

전주 영화제 티켓 사진. 엔드게임의 포토티켓이 보인다면 기분 탓이다.

 올해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여했다. 총 4박 4일, 즉 5/2일 밤에 전주로 가서 5/6일 밤에 돌아오는 일정을 소화했다. 영화제에서 총 15번을 관람했으며, 단편선 관람이 있어 총 편수로는 17편을 관람했다. 그중 미개봉작 12편, 재개봉작 5편을 관람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놀랐고, 또 다양한 영화들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라 즐거웠다. 이번에는 미개봉작 중 가장 인상 깊었던 5편의 기록을 남긴다.




1. <사탄에게 경배를?>

 발칙하다. 대범하다. '사탄 성전'이란 단체를 다루고 있는 아 다큐는 예상외의 작품이었다. 이들에게 사탄 숭배는 종교보다는 정치적 액션에 가깝다. '사탄'은 그들의 정치적 스탠스를 강렬하게 전달하는 하나의 아이콘에 불과할 뿐, 영적 숭배의 대상과는 거리가 있다.


 사실 처음 도입부를 볼 때는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처럼 무지몽매한 자들을 조롱하기 위한 다큐가 될 줄 알았는데, 조롱의 대상은 이들이 아닌 기독교였다. 이들이 아이콘, 아니 아이돌을 사탄으로 정한 것은 '신에 대적한다'는 사탄의 속성을 역이용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이들은 미국 정권에 기독교적 사상이 녹아들어 가는 것에 저항하며, 미국의 다원주의를 향한 민주 투사로 묘사된다. 페미니즘적 메시지, LGBTQ 지지 선언 등을 보면 이들은 사타니즘을 종교보단 정치적, 윤리적 강령으로 사용한다. 사탄의 이름으로 여성 쉼터에 생리대와 탐폰을 기부하고, 오각성을 등에 그린 채 삼지창으로 도로의 쓰레기를 정리하는 모습은 기묘하다. 이들은 '사탄'이란 존재를 '절대 악'보다는 '저항자'로서 새로 정의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이 영화 스스로도 다분히 정치적이다. 아담 맥케이가 떠오르는 편집 스타일과 날카로움,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에서 느낀 다큐 속의 블랙 코미디, <퍼스트 리폼드>와 유사한 결의 주제 의식 등 이 영화가 시사하는 지점들은 굉장히 흥미롭다. 사실 기독교인으로서 이들이 기독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몰이해가 보여 (당연한 얘기지만) 이들에게 동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기독교계가 스스로 성찰하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란 기대는 갖는다.




2. <썬더 로드>

 다양한 영화들이 한 번에 지나갔는데, 그 어떤 영화하고도 달랐다. 당장 떠오른 영화들은 <레이디 버드>, <플로리다 프로젝트>, <보이후드> 정도였다. <레이디 버드> 특유의 유쾌함과 따뜻함,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개성과 날카로움, <보이후드>의 귀중한 평범함이 전부 담겨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주인공이 처하는 고난의 전개 양상은 <인사이드 르윈>을 떠오르게 만들기도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감독이자 주연인 짐 커밍스였다. 도입부부터 롱테이크로 원맨쇼 시퀀스를 찍는데, 연기도 훌륭하지만 그 연기를 어떻게 돋보이게 하는지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좋은 연기자이자 동시에 좋은 연출자이다. 특히 경찰서 앞 주차장에서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장면이 있는데, 관객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휘어잡는 힘이 있다. 또 종종 주인공의 행동엔 우스꽝스러운 면이 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관객은 웃지만, 그 가운데 주인공의 슬픈 정서나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런 인재를 이제야 알다니.


 스포일러 없는 선에서 키워드를 몇 개 던지자면 가족, 아이, 이혼, 일상 정도가 될 것 같다.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 조금 당황했지만,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예상보다 더 유쾌했고, 또 예상보다 진지했다. 취향을 조금 탈 것 같지만 추천하는 작품이다.




3. <마침내, 지금에서야!>

 <마침내, 지금에서야!>는 [NJ: 벤 리버스 단편] 속 3편 중 가장 흥미로웠다. 이 39분짜리 실험 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먼저 첫 파트에서는 나무늘보가 이동하는 모습(동적인 움직임)을 흑백으로 보여준다. 나무의 밑에서부터, 중간 정도까지 올라갈 때까지. 그러다 갑자기 컬러로 화면이 전환되면서 <사랑과 영혼>의 OST로 유명한 'Unchained Melody'가 흘러나온다. 나무를 비롯한 배경은 평범하고, 나무늘보만 RGB로 쪼개져 잔상이 겹치듯 보인다.


 그다음은 나무늘보의 요소들을 (동일하게 흑백으로) 비춘다. 나무늘보의 얼굴, 발톱 등 나무늘보의 일부를 클로즈업 해 오랜 시간 조명한다. 그러고는 다시 컬러로 전환되며 'Unchained Melody'가 흘러나온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나무늘보의 행동(정적인 움직임)을 (역시나 흑백으로) 비춘다. 같은 자리에 멈춰있지만 앞발로 얼굴을 긁고, 고개를 돌리는 등의 행동을 비추다 영화는 끝난다.


 <마침내, 지금에서야!>는 대상의 본질, 그중에서도 구성과 동적 본질에 접근하려 시도하는 영화이다. 오랜 시간 동안 하나의 대상을 가감 없이 롱테이크로 찍음을 통해, 또 동시에 대상의 구성이나 움직임 감상에 방해가 되는 색을 배제한 흑백 촬영을 통해 본질에 효율적으로 접근한다. 또 영화를 동적 움직임, 구성, 정적 움직임의 3단계로 해체하여 그 탐구를 심화한다. 중간중간 삽입된 컬러 장면을 통해서는 삽입곡 제목처럼 대상의 'Unchained'한 상태, 즉 이런 탐구로부터 해방된 상태의 대상을 비추는 것이다.




4. <레이와 리즈>

 솔직히 처음엔 별로였다. 불필요한 이야기를 왜 이렇게 길게 하나 싶었고, 무엇을 얘기하려나 싶었다. 허나 노년의 레이가 불꽃놀이를 보다 과거로 플래시백하는 장면을 보고 이 영화가 묘한 울림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가 흘러가며 머릿속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맴돌았다. '아, 상당히 자전적이구나, 그리고 이미지를 통해 체험하는 영화구나'. 금세 이 영화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감독이 경험한 것뿐 아니라, 전해 듣기만 한 내용들도 재구성해 담겨있는 극 영화이다. 감독님이 말씀하시기를, 4:3 화면비를 사용한 것도 과거의 화면비를 사용함으로써 과거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그런 기억의 파편들을 모으면서 감독은 서사보다는 이미지, 그리고 그 순간순간의 감정에 집중한다.


 이런 식의 묘사는 호흡이 느리다. 한 시퀀스의 길이가 길고, 인물보다는 사건이 중심이 되어 극이 진행된다. 그런 감독의 시도는, 적어도 필자에게 있어 성공적이었다. 인물을 자체를 부각하지 않더라도, 사건 가운데서 인물들의 개성이 자연스럽게 발현된다. 나아가 인물들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과하고, 관객이 이입하도록 만든다. 사실 자전적 스타일의 창작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묘하게 이번 영화는 감정적인 울림이 컸다. 이런 긴 호흡은, 천천히 관객을 스며들게 한다. 그런 시간들이 알게 모르게 쌓은 감정은 영화가 끝난 후 여운으로 찾아온다.


 GV를 통해 만난 감독님은 상당히 섬세하고, 생각이 많은 분이셨다. 또 차분하시지만 동시에 말이 꽤 많은 분이셨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말을 하면서도 천천히 조심스레 곱씹으면서 대답을 하셨다. 감독님의 차기작이 궁금해진다.




5. <위대한 버스터 키튼>

 버스터 키튼의 영화를 단 한 편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관람했다. 단지 그가 채플린과 유사한 시대의, 유사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점만 아는 상태에서 관람했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눈시울이 붉어졌다.


 영화는 크게 두 파트로 구성돼있다. 버스터 키튼의 생애를 좇는 전반부와, 그의 작품들을 면밀하게 살피는 후반부. 영화는 그 과정들을 상세하게, 또 깔끔하게 담아낸다. 재밌었던 것은 키튼의 작품들을 소개할 때 몇몇 작품을 빼면 대부분 앞에 '걸작'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는 것이다(물론 일부 장면들만 본 필자도 충분히 공감하는 바이다).


 버스터 키튼의 작품들은 채플린과 유사하면서도, 그만의 개성이 있다. 키튼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시각적 충격을 주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영화와 평론가님에 따르면 키튼의 작품들은 제작비가 큰 편이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은 세트 구성과 액션의 타이밍 간의 조화가 훌륭하다. 그가 구성한 세트들, 특히 (당시) 최신 기술들을 활용한 장치들은 지금 봐도 창의적이고 경이롭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버스터 키튼 작품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자라났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감독이 결코 자신을 뽐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철저히 버스터 키튼을 빛내는 데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오히려 감독이, 그리고 이 영화가 더욱 빛나게 된다. <시네마 천국>이 떠오르는 엔딩은 그 장면부터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헌사는 이렇게 바치는 것이다.




밤에 찍은 전주국제영화제의 상징, 레드큐브.

 이렇게 여러 편, 먼 곳의 영화제를 오랜 기간 갔다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마냥 순탄치도 않았고, 또 완벽하게 만족스럽진 못했다.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아무도 없는 곳>, <디아만티노>, <뎀프시롤(가제)>, <이장> 등등 놓친 영화들도 너무 많아 아쉬움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겐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고 잊지 못할 시도였다. 휴학을 하지 않는 이상 BIFF는 불가능할 것 같고, BIFAN은 종종 갈 수 있지 않을까.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또 생겼다.



- CineV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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