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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몰리 Aug 19. 2019

남편에게 미안한 일곱 가지 같은 한 가지


결혼, 인정






    말없이 주방에 서서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가스레인지 한 구에는 낮에 만들어둔 짬뽕을 데웠고, 또 다른 구에는 마트에서 사 온 냉동 칠리새우를 튀기고 있었다. 매운내가 올라와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굳이 불 앞에 서 있었다. 칠리새우를 사 오는 길에 남편과 다투었기 때문이다.


    운전 문제였다. 마트에 다녀오는 길, 거칠게 운전하는 옆 차 때문에 사고가 날 뻔했다. 남편은 그 차주에게 항의를 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말라고 우리 쪽도 잘못이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를 답답해했다. 문제를 제공한 차는 쌔앵하며 비웃듯 달아나 버렸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못마땅해하며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면서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도,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와서도, 손을 씻고 사 온 물건을 냉장고에 넣으면서도 말이다.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매운내가 더욱 짙어져 찔끔 눈물이 나올 것 같을 때쯤, 남편이 내 옆에 섰고 이렇게 말했다. 얘기 좀 하자.






    함께 살면서, 남편에게 미안한 몇 가지가 있다. 음, 먼저는 아침 식사를 못 챙겨 주는 거. 처음 몇 달은 새벽같이 나가는 남편보다 일찍 일어나 밥을 차려 줬었다. 국도 있었고, 달걀말이도 했었다. 하지만 점점 토스트나 시리얼 같은 간편식으로 변했고, 몇 달이 못 돼서 백기를 들고 말았다. 여보, 나는 부엉인가봐. 부엉이가 아니라 올빼미겠지. 아무튼 여보, 간헐적 단식을 하면 살이 빠지지 않을까? 나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아무 말이나 했고, 공복의 출근도 괜찮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야 말았다.


    또 잦은 야근과 밤샘 당직, 며칠 씩 집을 비워야 하는 훈련(남편은 군인이다)에 서운해했던 것도 미안하다. 누구보다 힘든 건 당사자인 남편일 텐데도 남편은 늘 집에 혼자 있는 아내 걱정하기를 먼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남편을 의젓하게 기다려주지 못하고 철 없게, 언제 와? 보고 싶어~, 를 자주 말했다. 언제 오는지 뻔히 알면서도.


    노브랜드 냉동 칠리새우를 자주 해주지 않는 것도 미안하다. 자취 생활이 길었던 남편에게 냉동식품이란 최고의 반찬이었다. 게다가 PX에는 다양하고, 저렴하고, 맛있는 냉동식품이 가득했다. 반면에 나는 냉동식품은커녕 햄도 먹지 않고 컸고, 방부제 가득한 음식 많이 먹으면 죽어서도 안 썩을 걸, 하는 농담도 자주 했었다. 때문에 장을 보러 가면 나는 야채와 과일 코너를, 남편은 냉동고 앞을 가장 사랑했지만 냉동식품이나 육가공품을 사는 일은 별로 없었다.


    음, 운전할 때나 자잘한 습관들에 대해서 잔소리한 것도 미안하다. 시댁에 더 마음을 써드리지 않은 것도 미안하고,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고집을 피웠던 일들도 미안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미안한 모든 것들을 다 덮는 하나의 커다란 미안함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바로...






    짬뽕 냄새 가득한 주방에 서서 얘기 좀 하자는 남편은 내가 꽤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의문을 꺼냈다. '인정'에 대한 것이었다.


    남자는 인정받을 때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많이 갖는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자주 듣거나 읽었고, 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혼 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행동에 옮기려 했다. 여보, 대단하다! 멋지다! 우와, 이걸 자기가 했다고? 진짜 믿음직스러워. 최고야! 나는 그렇게 인정하는 말을 자주 하며 그를 사랑해 준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은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늘 나의 인정에 목말라했으니까. 그럴수록 나는 남편 앞에서 호들갑을 떨며 세워주는 말들을 했지만, 효력은  뿐이었다.


    그러던 중에 남편 인정을 받고 싶다는 얘길 한 거다. 나는 그의 말이 반가웠고, 그가 말을 잇도록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여보, 나는 자기한테 인정받고 싶어. 잘했다, 멋지다, 최고다, 말하는 거 말고. 그러니까 내 감정이나 내 마음을 당신한테 인정받고 싶어. 아까 운전할 때 내 쪽에도 어느 정도 잘못이 있었겠지만, 그걸 떠나서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나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자기가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 음... 냉동식품만 해도 그래. 나는 이거 안 먹어도 돼. 그런데, 좀 유치하긴 한데... 내가 자기 뜻 따라서 이런 거 안 먹는 걸 당연하다 생각하지 않고 자기 위해서 내 식성까지도 바꾸고 있다는 걸 인정해주었으면 좋겠어. 물론 오늘은 칠리새우를 사 왔지만.


    조금은 부끄럽다는 듯 자기 이야기를 하는 남편의 모습은 내 눈에 하나도 유치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차 싶었고 미안했다.


    인정이란 말 자체가 그런 걸 그렇다고 받아들여주는 건데. 무언가를 잘하지 못했을 때 괜찮다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는 게 아니라, 잘못해서 괴로운 그 마음 편에 함께 서주는 건데. 나는 그 일에 서툴렀다. 생각해보니 내가 미안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의 본질은 남편을, 그의 마음을, 그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인정해야 하는 것인지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들이었다.






    말을 끝낸 남편은 머쓱해했다. 열을 내며 반론해야 하는 내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반론 대신 미안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폴폴 끓는 짬뽕 앞에서 한번 꼬옥 안았다. 그리고 안은 채로 오늘 짬뽕 맛있게 먹자고, 칠리새우(냉동식품이긴 하지만)도 맛있게 먹자고 말했다.











매거진_소박한 결혼산문

2018.05.05.~

@john.and.molly

Photo. ⓒChristiana Rivers,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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