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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Aug 16. 2019

아이와 선물, 남편의 질투


결혼, 질투





    결혼 전 가르치던 아이들 중에 키가 작은 아이가 있었다. 아홉 살 아이가 크면 얼마나 크고 또 작으면 얼마나 작으려고 싶지만 그 아이는 유독 작았다. 까만 얼굴에 콕콕 박힌 커다란 눈동자. 가느다란 팔과 답답하다며 양말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뛰어다닐 때 본 조그만 발가락들. 바가지 머리. 이런 것들 때문에 더욱 작아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는  똑똑했다. 아니, 꼭 고양이 같이 영악했다. 눈 앞에선 착하고 얌전한 척했지만 내 뒤에선 몰래 스마트폰 게임을 자주 했고, 높은 곳에 올라가 말썽을 피우기도 자주 했다. 말도 어쩜 그리 잘하는지. 그 아이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어른스러우면서도 단도직입적인 말투가 귀여워 나도 모르게 비죽 웃음 났다. 과학을 잘해서 영재 교육을 받기도 하는 아이였지만, 내 눈엔 영락없는 아홉 살짜리 개구쟁이였다.






    하루는 아이와 밖에서 떡볶이를 먹었다. 조그마한 아이는 내 앞에서 맛있다며 그 빨간 떡을 날름날름 먹었지만, 입가가 빨게 지는 걸 보며 분명 떡볶이가 아이 입에 맵다는 걸 알아챘다. 얘, 너 맵지? 아이는 맵지 않다며 고집스럽게 떡을 먹었다. 나는 그릇 하나를 얻어다가 냉수를 담 식탁 위에 올려뒀다. 그리고 떡을 씻어 양념을 덜어내고 먹었다. 아이는 내 얼굴을 쓰윽 올려다보더니, 자기도 나를 따라 떡을 씻어 먹었다.


    다음엔 쭈쭈바가 먹고 싶다 해서, 슈퍼에 들어가 빠삐코 두 개를 골라 들었다. 우리는 나란히, 마치 엄마와 아들처럼 쭈쭈바를 먹으며 쫄래쫄래 골목을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아이는 갑자기 해장국 집 앞에 섰다. 저기는 자기 친구네 가게라고 했다. 아이는 가게 안으로는 들어가지는 않고,  밖에서 고개만 쑥 밀어 넣고 곁눈질로 친구를 찾았다. 나는 그 가게 멀찍이에 어색하게 서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혼자 돌아온 아이는 친구 자전거가 밖에 지만 친구는 안에 없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고,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또다시 골목을 걸었다. 아이는 자기 할머니에 대해, 영재 교육의 지루함에 대해, 떡볶이가 결코 맵지 않았음에 대해 쉬지 않고 조잘조잘 떠들었다. 그러다 번뜩, 그 자리에 섰다.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우며 나를 올려다봤다.


    선생님, 제가 선물드릴게요.


    선물? 아이는 가방이 없었다. 선물이 들어있을 만한 주머니도 없었다. 아이는 자기를 따라오라며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빨라진 아이의 걸음에 맞춰 그 뒤를 쫓았다. 더운 날이었다. 찐득한 아이스크림이 새서 손이 찝찝했다. 하지만 별 수 있나, 아이를 따라 걸어갈 수밖에.






    그렇게 이 십분 쯤을 걸었다. 아이는 다 왔댔지만, 눈 앞에 펼쳐진 건 오르막길이었다. 아휴, 그래. 어디까지 가야 해? 나는 최대한 친절하게 말하려고 노력해야만 했다. 짜증이 슬슬 올라오고 있었다. 나와는 달리 아이는 여전히 쌩쌩했고 약간 상기된 듯 보였다. 그리고 또 십 분. 아이는 드디어 나에게 눈을 감으랬다. 그리고 이젠 자기 손을 잡고 조금만 더 가자 했다. 나는 아이 말대로 눈을 감고, 실눈의 유혹과 아이에 대한 불신과 싸우며 더듬더듬 걸어 나갔다.


    드디어. 아이는 들뜬 목소리로 눈을 떠도 된다고 했다.


    우와. 눈 앞에 꽤 넓은 장미꽃밭이 펼쳐져 있다. 나는 아이 앞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너무 예쁘다. 어떻게 여기에 데려 올 생각을 했어? 정말 너무 예쁘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꽃밭은 동그랗고, 알록달록했고, 사랑스러웠다. 저 멀리 하늘이 붉어지고 있었다. 아이와 같이 꽃밭으로 내려 가까이서 보니 꽃은 아이의 얼굴 만하게 활짝 있었다. 아이는 뿌듯한 목소리로 여기가 장미 공원이라고 알려줬다. ㅎㄱ아, 진짜 멋지다. 나는 아까보다 더 크게 호들갑을 떨며 감탄했다. 아이는 나의 호들갑에 신이 났는지 공원을 쌩쌩 달리며 마지막 에너지까지 탈탈 털어냈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공원을 내려왔고, 아이를 집에 데려다줬다. 오래 걸어서 다리가 아팠지만, 아이가 준 커다란 감동은 나의 피로를 나누어주었다.






    지금도 그 아이 눈망울이 내 눈에 선 해. 나중에 걔 어머니한테 들은 얘긴데, 그날 너무너무 행복했다고 며칠을 그날 얘기만 했다는 거야. 어느 정도였면, 걔 할머니가 알지도 못하는 날 질투하실 정도였대.


    차를 타고 바다로 가는 길에 이 얘기를 , 운전하던 남편이 옆에서 칫, 한다. 그래, 어린애한테 꽃 선물 받으니까 그렇게 좋았어? 여보, 누가 들으면 유부녀가 젊은 대학생에게 커다란 꽃묶음을 선물 받은 줄 알겠다. 새초롬하게 말했지만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남편의 귀여운 질투에서 어쩔 수 없이 사랑을 읽었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에 질투가 없는 것도 참 위험한 일이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질투는 또렷한 사랑의 표현이다. 배우자가 누굴 만나 어디에 가든, 무엇을 먹든, 또 무엇을 주고 받든 신경을 쓰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받아주며 이해한다면, 그건 건강한 사랑일 수 없다. 또 배우자의 몸이 내 옆에 있고 적어도 잠은 집에서 자니까 그의 마음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쯤은 눈감아 줄 수 있어, 라고 말한다면. 반대로 몸은 내 옆에 없지만 그의 마음만은 내가 가졌으니 됐어, 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면. 그것만큼 아픈 사랑이 또 있을까. 그렇다고 상대방을 의심하며 옭아매는 질투나 질투를 함으로 자괴감에 빠지는 것 역시 괜찮은 사랑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     


    그저 우리의 사랑에서 질투가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 피어오르는 질투를 자존심 때문에 애써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상대방의 질투에 과민 반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뎌진 마음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으면 좋겠고, 날 선 마음 역시 잘 다루고 싶다. 상대방의 질투하는 마음을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많이 정말 많이 대화했으면 좋겠다. 상상 속에 갇혀 서로를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처음부터 거짓말이 없는 사이였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어도. 서로 귀여운 질투를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매거진_소박한 결혼산문

2018.05.05.~

@john.and.molly

Photo. ⓒDiana Schröder-Bode,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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