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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Sep 01. 2019

여보, 우리 뭐하고 놀까?


결혼, 취미





    기야, 왜 자기가 이겨도 화를 내?


    왜 화를 내냐니. 그러게, 왜 화를 내고 있지? 남편과의 3판 2승 배드민턴 경기에서 내가 이겼다. 하지만 약이 오른다. 른 사람을 주는 건 괜찮은데, 다른 사람이 나를 봐주는 건 화가 난. 맞다. 이번 경기는 결코 정정당당한 경기가 아니었다. 남편이 나를 봐준 거다.


    체력과 체격, 힘, 운동 신경, 아니 모든 면에서 남편이 나보다 운동을 잘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도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불타오르는 승부욕 때문이다. 나는 그 뜨거운 승부욕 때문에 배드민턴, 볼링, 자전거 타기, 하다 못해 야구 배트까지도 끊임없이 남편에게 도전하고 있지만, 정정당당히 이기기는 늘 어렵다.


    하지만 운동이 아니라면 내가 남편을 이기는 경우도 꽤 있다. 스마트폰 게임(궁수라는 활쏘기 게임)이나 보드게임(루미큐브) 같은 것들이다. 어느 한쪽이 유독 잘하는 게 아닌, 그러니까 결국은 운으로 하는 게임은 결판을 낼 때까지 밤을 새우기도 한다. 한 번은 둘이 마주 앉아 밤새도록 윷놀이를 한 적도 있다. 그 날의 윷놀이는 억울하고 분하다며 터뜨린 나의 울음으로 끝이 났다.


    승부욕 때문에 끝이 아름답지 않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나는 남편과 노는 게 좋고, 함께 할 게 많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까지 하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건 아니었다.






    나와 남편은 참 많이 달랐다. 남편은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최신 영화를 좋아했고, 나는 하나에 꽂히면 똑같은 영화를 열 번도 더 봤다. 음악 취향도 달라서 함께 자동차 여행을 떠날 땐 어떤 음악을 먼저 들어야 할지 상의해야 했다. 남편은 영상을 나는 글을 좋아했고, 남편은 버거킹을 나는 맥도날드를 좋아했다.


    취미도 달랐다. 정확히 말하면 남편에 비해 나는 취미랄 게 없는 사람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취미는 일work이었다. 쉴틈 없이 일에만 몰두했던 나는 취미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불쌍한 일중독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군인으로 살면서 누구보다 바쁜 시간들을 보냈지만, 어쨌든 그는 자취생이었다. 혼자 보낼 그 긴긴밤을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했을 거다. 그렇게 남편은 디지털 피아노를 사서 연주곡을 연습했고, 동료들과 어울려 축구를 했고, 자전거도 자주 탔다. 가끔은 커다란 퍼즐로 시간을 보냈고, 온라인 축구 게임도 했으며, 라톤도 뛰었다. 그에게는 취미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여가시간의 주도권은 남편에게 넘어갔다. 나는 남편을 따라 백만 년 만에 PC방 갔고 처음으로 피파 온라인을 해 봤다. 당구장에 가서 포켓볼도 아닌 사구를 쳐봤다. 천 조각 퍼즐 앞에도 앉아 보고, 달리기도 해 봤다. 하지만 나랑은 영 맞지 않았다. 같이 놀고 싶은데, 같이 놀 게 없다니! 남편도 나도, 처음 몇 달은 당혹스러운 주말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방법은 있었다. PC방에 가서는 어릴 때 하던 크레이지아케이드를, 당구 대신 볼링을, 퍼즐 대신 아이패드 그림을, 자전거 대신 배드민턴을.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같이 놀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나갔다.






    취향과 취미가 다른 두 사람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고, 단순한 양보와 배려로는 긴 시간을 같이 있을 수 없다는 걸  PC방에서 피파를 하며 깨닫게 됐다.


    잠깐 같이 있다 말 사람에게라면 양보가 쉽지만, 평생 같이 있을 사람에게라면 양보보단 타협이 필요한 거였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취미를 찾아내는 것, 익숙하지 않더라도 처음부터 같이 느긋하게 배워 갈 의지를 갖는 것. 이런 마음이라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더라도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기만 할 것 같은 묘한 흥분이 생긴다.






    우리 부부는 바다를 참 좋아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만큼 수영을 잘하지는 못한다. 더 추워지기 전에, 같이 근처에 있는 체육관에 가서 수영 초급반에 등록하기로 했다. 열심히 배워서 세상 어느 바다에서라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옷을 벗어던지고 그 바다의 품에 달려갈 수 있기를 꿈꾼다. 한 사람만 덩그러니 모래에 앉아 짐을 지키고 있는 건 아무래도 서운할 것 같다.











매거진_소박한 결혼산문

2018.05.05.~

@john.and.molly

Photo. ⓒJakob Owens,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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