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잠식시키는 희망

12 내 안에 희망이 있음을 기억하라

by 권미림

"그리고 강하다는 것은 사방이 캄캄한 절망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해결책을 찾는다는 뜻이란다."_<그래도 계속 가라>, p.128







우리 안에는 절망과 희망이 있다.

그 둘은 서로 더 넓은 마음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늘 싸운다.





*

늦은 밤, 망망한 바다를 커다란 배로 건너고 있었다. 늦은 밤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꼬박 배 위에서 보내야 했지만, 더운 나라라고 날씨를 얕잡아 봤나 보다. 반바지에 긴팔 남방 하나로 밤을 거뜬히 보낼 수 있을 줄로 안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부는 거센 비바람에 몸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선원들은 앉는 자리에까지 비가 넘어오지 않도록 분주하게 천막을 내리고 어딘가에 밧줄을 조여 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는 오들오들 떨며, 가끔씩 바람과 비를 맞으며, 캄캄한 밤을 버텼다.


그러다 문득 절망감이 찾아들었다. 바다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새까만 블랙홀처럼 느껴졌고, 바다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두려움이 몰려왔다. 바다만 그런 게 아니었다. 비가 내리는 하늘에는 당연히 한 점의 빛도 찾을 수 없었고, 배 기둥에 붙은 희미한 전깃불만이 나를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 밤이 끝나면 정말 다시 해가 뜰까. 이 밤이 끝나기는 할까. 그전에 배가 뒤집히거나, 내 몸이 바람에 날려 바다로 내동댕이쳐지면 어쩌지. 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다 말고 고개를 내저었다. 대신 체온이 오를 수 있도록 두 손으로 어깨와 양팔을 비벼며 반드시 밝아올 새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새 날의 희망이 옅게나마 내 마음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잠깐 잠이 들었다 깼다. 어느새 비구름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고, 바다는 제 색을 되찾고 잠잠했다. 그래, 밤이 끝난 것이다. 밤새 나를 덮쳤던 막연한 절망이 빛에 녹아 사라졌다. 믿었던 대로 새 날이 왔다. 운이 좋으면 돌고래 떼나 바다거북이를 볼 수 있다는 선원의 말이 생각나서, 밤에는 근처에 갈 엄두도 못 냈던 난간에 오랫동안 붙어 서있었다. 여전히 바다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작은 파도가 배 옆을 칠 뿐이었다. 그 옆에 물고기들이 붙어 헤엄치고 있었다.



절망은 우리 안에 거하고 있네.
하지만 절망을 물리치는 방법인
희망 또한 마찬가지지.



한참을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았지만 돌고래 떼는 볼 수 없었다. 대신 바다를 오랫동안 봤다. 어젯밤, 그 캄캄한 중에도 바다는 나를 떠받친 채 뭍으로, 뭍으로 흘려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배의 엔진에 의해서든 순전한 바람의 힘 때문이든 상관없이, 바다는 거기에서 자기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지난밤, 나는 바다와 싸운 게 아니었다. 추위나 어둠, 내리는 비와도 싸우지 않았다. 속에서 밀려드는 절망과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절망은 바다 끝에서 떠오르는 해에게 진 것이 아니라, 그 해가 다시 떠오를 것이라는 내 속의 희망에게 패배한 것이었다.



그러니 얘야,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희망에 매달려야 한단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사실을,
네가 그 태양을 볼 수 있도록
희망이 도와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느니라.





*

우리 안에는 희망과 절망이 같이 거하고 있다. 그 둘은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다툴 테지만, 희망이 절망을 물리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많은 순간, 절망을 꺾고, 희망이 마음의 넓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을.






한 권의 책, 수만의 용기

<그래도 계속 가라>

_조셉 M. 마샬 지음, 유향란 옮김, 조화로운 삶

@john.and.molly

photo. @builtbymath,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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