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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Nov 05. 2020

계절은 마음에 담는 거구나

    그래도 요번 가을은 제법 가을다웠다. 큰 도시를 벗어나 작은 도시, 아니 시골에 더 가까운 작은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까. 가을이 제법 짙었다. 산들이 풋색을 벗고 서서히 익어가는 걸 매일 눈으로 확인했다. 저녁이 내려앉는 시간 점점 일러지는 것과 하늘색 점점 더 파래지는 것도. 낙엽이 지고 볕이 진해지는 것도. 을은 촉감이 되어 품 안에 들어오기도 했다. 찬바람. 외투 속에 들어온 바람은 내 안에 오래 머물다 나갔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차로 조금만 나가면 온통 밭이고 산이고 강이지만, 요즘은 깊은 시골에도 카페가 하나 둘 생기고 있어서 예쁜 풍경과 함께 괜찮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데가 많다. 시월, 나는 그런 시골 카페에 자주 찾아갔다. 그곳에서 눈에 들어오는 예쁜 것들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자주 찍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사진은 눈으로 보는 것을 따라가지 못했다. 대부분 사진은 너무 쨍하거나 너무 탁했고, 더 나은 걸 찍으려고 애를 쓰다 결국 장비만 탓했다.


    그러다 손에서 폰을 내려놓고 카페 창문을 통해 바깥은 건너 보면, 손바닥만 한 화면으로 보는 세계와차원이 다른 색감 예뻤고 참 기다. 찬연한 귤 색. 잘 익은 고구마 색?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네!


    여전히 볕은 뜨거운데, 그래서 내가 앉은 창가 자리는 살짝 더운데도 불구하고 바깥의 찬바람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아니면 아까 품 안에 들어온 가을이 뜨거운 볕에도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나. 그 생각을 하니, 내 안은 참 어지럽겠구나. 찬바람과 여전히 뜨거운 볕이 뒤엉켜 복작대겠구나. 웃기고, 땀이 난다.


    결국 외투를 벗고 조금 흘린 땀을 식히고. 그게 꼭 마음에 낀 꿉꿉한 습기를 말리는 기분이다. 나는 잠깐 가만하게 앉아 볕을 쬐었다. 예전엔 해를 쬐는 일이 영 내키지 않고 성가셨다. 주근깨 때문에. 요즘은 얼굴과 등 위로 내려앉는 볕이 몸에 좋은 보양식이라도 되는 양 반갑기만 하다.


    늦은 오후외투를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갔다. 다시 찬바람이 품 안에 스며들면, 그제야 계절은 SD카드가 아니라 마음 안에 담아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이 깨달음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반복해서 아오는 깨달음. 아, 바람도 자세히 보면 보이는구나, 볕의 누운 각도도 다 보이는구나. 손바닥만 한 화면 대신 마음에 담아둔 가을은 자려고 누운 침대 위에서도 아른거릴 것이 분명하다. 멀뚱히 뜬 눈을 감아도 바람이 보이고 누운 볕이 보 것이다.


    아, 이래서 계절은 마음에 담는 거구나. 새삼스러운 깨달음에 다시 한번 호들갑을 떨다가, 무심히 가을을 보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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