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모습이 담긴 오래된 앨범을 보거나 외장 하드에 저장된 사진 파일들을 열어보면 세월의 속도에 새삼 놀라기도 하고, 촌스러운 과거 모습에 부끄러움이 피어오르기도 하며,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때를 향한 애틋함에 잠기기도 한다. ‘맞아, 내가 저곳에 갔었지. 내가 저 사람들과 저걸 했었지.’ 그렇게 잊고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옛날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우스운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가끔 헷갈린다. 내 머릿속에 있는 기억들이 원래부터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들인지, 아니면 남겨진 글과 사진을 보고 만들어낸 것들인지 말이다. 내가 세 살 때 인형을 등에 업은 채로 집을 빠져나와 혼자 큰길을 건너 슈퍼에 간 적이 있다. 작은 아이의 일탈은 십 분도 안 되어 끝이 났지만, 그때 겪었을 엄마의 당혹스러움과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공포감은 분명 심각했으리라 짐작한다. 어쨌든 엄마는 나를 다시 찾아냈고 안도한 다음, 아이 손에 들린 고추장 한 통에 너무 어이가 없어 사진 한 장을 찍어 두었다. 이 사진 때문에 나는 그때의 일을 진짜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사진은 정직한 편이다. 글은 글을 쓴 날의 감정과 다짐의 정도, 삶을 대하는 태도 등에 영향을 받는다. 서사라기보다는 해석이고, 사실이기보다는 진심이다. 이 때문에 글은 좀 줏대가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오히려 솔직하기도 하다. 사랑을 모르는 이가 쓴 글에는 사랑이 담기지 않고, 용서를 경험하지 못한 이가 쓴 글에는 용서가 머물지 못하기에 글은 거짓말을 못 한다.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사랑을 살고 싶다. 내 글이 내 삶의 반영인 것을 믿으며,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이런 생각이 짙어지는 건 요즈음 내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못해서다. 좋은 글을 쓰고자 하면서 정작 내 삶에는 사랑이 흔치 않기 때문이고, 작고 약한 것들을 위해 손해 보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내 마음에는 여전히 싸움이 있다.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의 싸움, 용서하지 못할 것을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의 몸부림.
그 싸움이 쉽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진심을 쓰고 싶었다. 작고 작아서 자세히 보아야 하는 글일지라도 싸움의 흔적이 있는 글을, 정직히 살아낸 글을, 잘 씹고 삼켜 결국에는 소화해 낸 글을 쓰고 싶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보아도 괜찮은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 마음의 몸부림으로 이 책을 썼다.
여전히 나의 삶에는 사랑이 부족하지만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지기를 바라며, ‘아직 살아갈 수 있겠구나’ 싶어지기를 바라며, 용서의 해방을 누리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