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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Dec 20. 2020

걸어서 국경을 넘는 기분

농카이

    라오스에서 살 때 나는 여행자 비자로 지냈다. 정확히 말하면 비자 없이 지내다가 무비자 체류 허용 기간이 끝나면 꼭 국경을 넘었다 다시 들어왔어야 했다. 그래서 자주 태국의 국경 도시인 농카이에 다녀왔다. 그 일은 처음엔 굉장히 신기하고 짜릿한 경험이었지만 그것도 반복하다 보니 긴 줄을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움과 매번 내야 하는 돈과 국경까지 나가는 데 드는 아까운 시간 등으로 지치는 일이 되어 버렸다. 내가 일하던 국제학교 교장 선생님이 국경까지 차를 태워다 주시면 그나마 덜 피곤했고, 가끔 라오스 친구들과 뚝뚝이(오토바이 택시)를 잡아 타고 국경에 가기도 했는데 그럴 땐 정말 피곤했다.


    그날 난 학교 직원인 파디 언니랑 같이 뚝뚝이를 타고 국경에 가기로 했다. 라오스 몽족인 파디 언니는 유독 얼굴이 예쁜 언니였는데 그날따라 가장 예쁜 치마를 골라 입고, 화장도 뽀얗게 하고, 핸드백에 뾰족구두까지 신은 더 예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깜짝 놀라며 언니 진짜 예쁘다, 라는 말을 서너 번 했다. 우리는 함께 뚝뚝이를 타고 국경으로 향했다. 황토색 흙먼지가 시야를 가렸고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에 뚝뚝이는 엉덩이가 아플 정도로 덜컹댔다. 게다가 습기 없이 텁텁하게 더운 건기 날씨까지. 국경을 넘기도 전에 나는 벌써 피곤해져 버렸다. 하지만 파디 언닌 흔들리는 뚝뚝이 안에서도 다소곳이 앉아 여러 번 화장을 고쳤다.


    라오스 뚝뚝이를 그대로 타고 국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뙤약볕을 그대로 받으며 출입국 관리소 앞에 줄을 섰다. 거기서 한 시간을 보냈고, 다시 태국 뚝뚝이를 타고 점심 먹으러 쇼핑센터에 가기로 했다. 농카이는 그리 큰 도시는 아니었지만,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보다는 훨씬 반듯해 보였다. 도로는 잘 포장되어 있었고, 건물들은 꽤 컸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쇼핑센터에는 라오스에서는 보지 못했던 패밀리 레스토랑과 카페, 패스트푸드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우린 그중에 한 곳을 골라 들어갔다. 라오어와 태국어는 거의 비슷해서 파디 언니는 능숙하게 식사를 주문할 수 있었지만 어쩐지 종업원은 몇 번이나 못 알아듣는 척했다. 언니는 더욱 또박또박한 발음과 우아한 시선으로 말을 건넸고, 종업원은 여전히 앙칼진 태도로 주문을 받아 주었다.


    그때 난 파디 언니의 큰 눈이 살짝 파르르 떨리는 걸 보았지만 언니에게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딴청을 피웠다. 식사가 나오고 천천히 먹기 시작할 때 쯤, 언니는 그 일대해서 먼저 얘기를 꺼냈다.


    "라오어랑 태국어는 80% 정도 비슷해. 그래서 저 사람들은 내 말을 다 알아들었을 거야. 그냥 라오스 사람을 무시하는 거지 뭐. 태국이 라오스보다 훨씬 잘 사니까."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옷 가게 몇 군데를 둘러본 다음 쇼핑센터 밖으로 나왔다. 파디 언닌 쇼핑센터 안에 있는 그 누구보다 예쁜 모습이었지만 어쩐지 아침에 만났을 때처럼 생기로워 보이진 않았다. 우린 지쳤고 더 이상 농카이에, 그러니까 더 이상 태국에 머물고 싶은 마음 없다. 다시 뚝뚝이를 잡아 탔다. 그렇게 국경으로, 출입국 사무소로, 흙길로, 비엔티안으로, 라오스로 돌아갔다. 이제 얼마 동안은 골치 아픈 비자 문제없이 비엔티안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걸 생각하면 속이 개운했지만, 파디 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걸렸다. 그날 이후로 나에게 걸어서 국경을 넘는 일은 짜릿하거나 유쾌하지도, 마냥 번거롭거나 피곤하지도 않은 일이 되었다. 그저 살짝 파르르 떨리던 눈, 파디 언니의 큰 눈을 떠올리는 일이 된 것이다.


2010, 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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