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비엥으로 향하는 버스에 앉아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수영복 차림의 유럽인들이었다. 그들 틈에 앉아 있자니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니었다. 나는 최대한 그들과 멀리 떨어져 앉고 싶었지만, 이미 만석이었던 버스에서 내가 앉을자리는 맨 뒤 창가 자리밖에 없었다. 유럽인들은 내가 지나갈 수 있도록 흔쾌히 길을 터주었고 자리도 내어 주었다. 또 어린아이를 대하는 태도로 나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너 혼자 온 거야?", "무섭지 않았어?", "우리가 같이 있어줄까?" 같은 말들. 그들은 술에 취해 있는 게 분명했다. 끊임없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지치면 온 몸에 힘을 빼고 늘어져 잠을 잤다. 방비엥은 그런 곳이었다. 술에 취하고, 춤을 추고, 늘어져 잠을 자는 곳.
방비엥에 도착하자마자 괜찮아 보이는 호스텔에 방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소나기가 내렸는지 온 거리는 촉촉이 젖어 있었고, 하늘은 흐렸다. 나는 아무 가게나 들어가 라오스식 샌드위치 하나를 주문해서 먹고 가게 테라스에 놓인 매트리스 위에 누워 산 사이를 흘러가는 구름들을 바라보았다. 아까 그 유럽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내 발가락을 스치는 고양이에 놀라 잠에서 깼다. 오후 다섯 시, 날은 어느새 화창하게 개 있었고 온 공기는 습했다. 하릴없이 거리를 걷다가 어스름을 만났다. 숨어 있던 여행자들이 거의 벗은 채로 하나둘씩 거리로 흘러나오더니 금세 북적인다. 일부러 방비엥까지 찾아와 마약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소심한 나는 이런 분위기에 금방 주눅이 들어 버리고 만다. 시끄러운 음악과 더 시끄러운 사람들의 소리들, 그 흥겨운 취기를 뚫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 거리로 나왔다. 어제의 취기는 온데간데없고 차분히 가라앉은 공기만 거리를 천천히 선회하고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마을을 벗어난 먼 곳에 있는 어느 동굴까지 가보기로 했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온통 흙길 아니면 자갈길이었는데 자갈들이 어찌나 뾰족뾰족한 지 이러다 바퀴가 터져버리는 건 아닐까, 몇 번이나 서서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가니 인적 없는 얕고 너른 계곡이 나왔다. 그 계곡 끝에서 미리 약속을 잡아 둔 가이드와 캐나디안 커플을 만났는데, 그 가이드는 전문가 같지 않고 그냥 동네 아저씨 같아 보였다.
아저씨가 건네준 낡은 헬멧과 헤드렌턴을 쓰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통로를 한참 기어 들어가다 보면 갑자기 엄청난 크기의 공간을 만나게 되는데 거기엔 끼끼끼 대는 박쥐들과 커다란 불상이 있었다. 불상 옆으로는 물 흐르는 소리만 간신히 들을 수 있는 깊고 까만 웅덩이가 있었는데, 발을 헛디디면 그 자리에서 인생이 끝나 버릴 것 같았다. 사실 그 동굴 모든 곳이 그랬다. 난간이나, 안내문이나, 조명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완전 자연 그대로의 동굴이었다. 게다가 아저씨는 뱀이 나온다, 전갈이 나온다 하며 우리에게 겁을 주었고 그걸 즐기는 눈치였다.
동굴에서 살아 나와 아저씨에게 약속한 돈을 지불했다. 험한 산들과 산들 사이, 그 깊은 계곡에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하늘의 파란빛은 서서히 분홍색으로 물들고 있었고, 그 색은 하늘 아래에 있는 너른 계곡물 위에도 퍼져 나갔다. 내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이에 캐나디안 커플도 아저씨도 사라져 버렸다. 나는 완전히 어두워져 길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서둘러 자전거에 올라탔고,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았다.
마을은 어제저녁과 같았다. 라오 비어와 구운 고기와 음악, 젊음. 나는 자전거를 반납하고 여행자들 틈에서 파와 파인애플이 잔뜩 꽂혀 있는 닭꼬치와 환타를 사서 먹었지만, 여전히 그들 속에 섞이지는 못하고 금방 호스텔로 돌아와 버렸다. 아마 내일도 핫하다는 데는 가지 않고 또 외곽으로, 시골로, 사람이 많지 않은 곳으로만 다니다 돌아오겠지. 샤워를 하고, 조용한 방안에 누워 알이 베긴 다리를 주무르다 곯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