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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Jan 15. 2021

나의 첫 마라탕

쓰촨 성

    한동안 마라탕이 유행했었다. 그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벌집 아이스크림이나 대만 카스텔라와는 달랐다. 마라탕의 유행은 진득했다. 사실 유행이라는 말을 사용하기가 애매할 만큼 지금도 많은 이들이 마라탕을 즐겨 먹다. 한국인 대부분이 매운맛을 좋아하는데 이 마라탕은 매우면서도 한국의 매운맛과는 또 달랐으니 익숙함과 낯섦, 좋아함과 신선함, 아는 맛과 자극적인 맛을 모두 담아낸 음식인 것이다.


    중국집에서 파는 탕수육이나 짜장면에 '사천(쓰촨)'붙으면 매운맛이 더해지는 것은 중국 쓰촨 성 사람들이 매운맛을 즐겨 먹었기 때문이다. 내륙 한가운데에 있는 쓰촨 성은 더위와 추위가 심한 곳이어서 옛날부터 그곳 사람들은 악천후를 이기기 위해 고추와 마늘, 파, 후추 같은 향신료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그런 향신료의 집합체가 '마라'이고, 마라탕은 쓰촨 성 요리다.


    난 한국에서는 마라탕을 먹어본 적이 없지만, 중국 쓰촨 성을 여행할 땐 몇 번 먹어 봤었다. 현지인의 초대로 간 청두의 어느 고급 식당, 거긴 화려한 금박 문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가 들어간 방 한가운데 놓인 동그랗고 커다란 식탁은 새빨간 식탁보로 덮여 있었다. 대로를 향해 난 커다란 창문과 고급스러운 커튼, 은은한 조명, 아쟁 같은 악기의 연주곡. 나는 무겁고 편안한 의자에 기대앉아 얌전한 강아지처럼 음식을 기다렸다. 곧 마주한 음식은 넙적한 냄비에 채소가 듬뿍 담긴 국물 요리였다. 아, 지난날 중국을 여행하며 담백하고 매운 국물이 얼마나 간절했던가. 나는 그릇에 가득 떠 담아주는 국물을 마다하지 않고 받았다. 창밖으론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입술이 발갛게 부어올랐다. 목구멍은 육개장 토란대를 잘못 먹었을 때처럼 따끔따끔하고 얼얼한 것 같기도 했다. 식사를 대접해준 현지인은 지금 내가 먹은 음식은 마라가 들어간 음식이라고 알려주며 젓가락으로 동글동글한 알갱이를 집어 보여주었다. "특히 이거, 이거 보이죠? 이게 화자오라는 건데, 이것 때문에 얼얼한 거예요." 그 말을 마친 그는 보란 듯이 알갱이를 입 속에 톡 던져 넣었다.


    식당을 나와 보슬비를 맞으며 걸을 땐 어쩔 수 없는 옅은 배신감이 올라왔지만, 청두에 머무는 동안 아니 그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느닷없이 찾아오는 마라 맛을 향한 그리움에 당황해야 했다. 그 뒤로 쓰촨 성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몇 번 더 마라탕을 먹었다. 괴로워하며, 여기에 마약이라도 들어간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하며.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마라 맛의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땐 지금처럼 마라탕이 흔한 게 아니었고 어쩔 수 없이 그냥 잊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몇 년이 지나 우리나라에 마라탕이 유행하기 시작했을 땐 왠지 먹기가 꺼려졌다. 보슬비가 내리지 않아서 마라탕 식당에 가지 않았고, 그때처럼 으슬으슬 춥지 않아서 먹지 않았다. 저건 마라 훠거가 아니잖아 하며 먹지 않았고, 저것보다 맛있는 게 많아서 다른 걸 먹기도 했다. 사실 난 첫 느낌을 지켜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마라의 기억만큼은 강렬했던 첫 느낌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그건, 조금 웃기지만, 이미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수많은 '유일함'을 향한 순진한 애도의 표현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첫 번째에 담긴 의미가 두 번째에 담긴 의미보다 어쩔 수 없이 소중하고, 첫 번째 경험이 유일한 경험일 땐 그 의미가 더욱 소중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적어도 나는 그 유일함을 너무 쉽게 잃어버리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많이 경험해 보는 게 좋은 거야, 더 많이 가지면 나쁠 게 뭐야 하면서.


    나의 이 순진함에도 때가 묻었나 보다. 더 이상 '처음'과 '유일'을 같이 보지 않게 되었다. 수많은 것들 중에서 '유일'을 찾게 된 것이다. 수많은 여행들 중에 유일한 여행을 찾았고, 몇 번의 사랑들 끝에 유일한 사랑을 찾았다. 이런 변화가 순진함을 잃고 성숙함을 얻은 거라면 좋으련만, 도대체 알 길이 없으니 누가 와서 그렇다고 얘기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바깥엔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오늘 저녁으로 마라탕이나 먹어볼까.


2014, 쓰촨 성, 중국


ⓒ偉宗 勞 on unspal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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